좋아하는 시(詩 능선)

묵묵부답/이영신

능선 정동윤 2014. 4. 4. 09:05

 

 

묵묵부답/이영신

 

 

별 불만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죽청리 흰 염소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이 다가와 등을 툭툭 치시더니

시한부 3개월 삶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날부터 흰 염소는

집 앞에 면회사절이라 써 붙이고

하필 왜 저입니까?

가슴 쥐어 뜯으며 대들다 뒹굴다 발길질까지 했지만

그 분은 그냥 바라보기만 하셨습니다

그렇게 열흘은 분노로

또 열흘은 눈물로 나날을 떠밀어 보내던

죽청리 흰 염소

하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도 쓸고

널브러진 술병도 다 치우고

깨끗이 옷매무새 다듬고 귀내까지 걸어가

둑에 앉아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다

돌아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풀을 한가롭게 뜯었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