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정동윤 2014. 5. 11. 15:53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없는 뿌리를 일깨우고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감싸주었다./황무지 일부

 

우리들의 올해 사월은 세월호의 침몰로 더욱 잔인하였다
봄이 되면 모든 동식물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식물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몹시 분주해지며
겨우내 뿌리에 저장했던 영양분을 줄기로 올려보내고
마른 땅에서 물기를 뽑아 수관을 통해 올리는 고된 노동이 시작된다.
동물들은 안락했던 겨울잠에서 깨어나 배고픔을 채워야하나

먹을거리가 넉넉지 않아 몸은 더욱 앙상해지며
기온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사냥에 나선다.
나 같은 사람들은 바야흐로 울타리를 벗어나 외출을 늘린다.
새로운 시작은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이 수반되기에
TS엘리엇은 황무지에서 그렇게 노래했나 보다.

 

특히 올해는 봄이 특별하였다.
꽃들은 순서와 두서도 없이 무섭게 피어내며
생태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알렸고
서해 바다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배가 정비되지 않은 환경에서
출항을 하여 사상 초유의 참사가 발생하였다.
서둘러 피어나는 불안한 봄보다는 배는 고프지만 안정된 겨울이
좀 더 길었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 같았다.

 

물에 잠긴 세월호의 독재에 숨을 죽이면서도
나는 짧은 봄을 틈타 한라산을 다녀왔고
서오능 서삼능을 탐방하고
북한산 주간산행을 빼먹지 않았고
영주의 부석사와 태백의 협곡열차도 타고 왔다.

 

그리고 오늘 북아등 660회 주간산행을 시작하였다.

어제 조금 내린 비가 산길의 먼지를 가라앉혔고
진초록 오월의 공기는 마셔도 마셔도 청량하였다.
숨을 쉬는 입과 코 뿐만 아니라

피부에 와닿는 공기의 감촉도 신선하였다.
반소매 차림에 배낭을 매고 독박골 초입을 올라가니
참나무과 잎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부한 산소로 인해
금방 기분이 좋아지고 몸은 가벼워진다.


오전에 가장 왕성한 탄소동화작용을 한다는 활엽수 나무들 사이로
천수부부,근엽이,근모 그리고 우리 부부,
모두 6명이 660회 북아등을 관통하였다.
산에 관한한 많은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이라
말귀를 빨리 알아 듣고 사소한 몸짓 하나로도 금방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근모는 지난번 등산에서 가슴의 통증을 인지하고 병원으로 가서 핏줄이 막힌 걸 진단받고
잘 수습하여 오늘은 비봉 능선을 지나 우리들의 까페까지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천수도 요즘 봄앓이를 하며 다시 포근해 질 다음 계절을 참고 기다리는 중이다.

 

정오를 조금 지나 도착한 승가봉 옆 우리들의 아지트에
자리를 잡을 무렵 종수는 병태와 동네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넓었던 카페가 좁게 느껴질 정도로 꽉 찼다.
가슴 아픈 사월을 보낸 우리들도 뒤늦게 정신차린 계절 속에
겨우 마음을 진정 시키면서 한가하고 느긋하게 산길 걸으며
북한산의 신선하고 쾌적한 공기로 몸과 마음의 티끌을 씻어내고
짧은 능선을 따라 삼천사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인적이 드문 하산길은 바위길과 숲길을 번갈아 나타났으며
660회의 의미있는 산행을 조용히 마무리 하였다.
아무리 많이 보아도 질리지 않는 의상능선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남기기도 하였다.
연신내까지 모두 와서 생맥주로 간단한 뒤풀이를 하였으며
종수는 뜨거워진 총끝을 후후 불어 식혔다.

 

북아등 660회 참 즐거웠습니다.

 

-정동윤-

 

 


 

 


 

우리는 사방공사의 주역이었던 아까시나무의 고마움을  알고 있다.

오월이면 아까시꽃 향기에 취하며 거닐던 많은 추억도 있다.

 

신록 우거진 산길,

나무 그늘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소나무의 송화가 날릴 때는 코는 닫고 입을 열어

송화를 받아 먹었다고 하던데 요즘은 도시의 불순물이 묻었을까

염려되어 입마저 다문다.

 

떡갈나무 아파리가 점점 두꺼워져 산을 더욱 짙게 만든다

 

용소나무 아래서 잠시 휴식.막걸리 한 잔 하고.

 

용소나무를 타고 하늘로 훨훨 날아가고 싶은 오월이다.

 

향로봉 울퉁불퉁한 그 언덕을 힘을 내어 오른다.

 

先女도 가뿐히 오르고.

 

 

오월산의 씽씽함이 절로 묻어난다.

 

천천히 걸으며 가뿐숨 몰아쉬며

조금씩 맺히는 땀을  훔치다 보면 어느새 능선에 도달한다.

 

등짐을 지고 오르는 산행이 곧 삶이 아닌가?

 

비봉 능선을 지나 승가봉 옆의 아지트로...

 

소나무, 병꽃나무,생강나무,철쭉이 주변에 흩어져 자리잡고 있는 카페로...

 

모두 모여 밥도 묵고, 음악도 듣고 이바구로 나누고...

 

멀리 노적봉을 배경으로 찍는 줄 알았는데

의상능선으로 각도를 조절하였다.

 

바위길도 걷고

 

숲길도 지나

 

흙길을 내려가면

 

바위와 흙이 번갈아 나타나고

 

저 바위는 물개를 닮았다.

 

오월 햇살에 팔뚝이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