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서울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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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달동네.홍제동의 "개미마을"
6~70년대의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을,
이곳에도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가득 차 있었다.
개미마을 꼭대기에서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에는 가을이 길 위에 분분히 떨어져 있었다.
나무 계단의 일부가 뜯겨지고 콘크리트가 파손되었지만 연륜을 느끼게 하는 정다운 길이다.
타이완에서 이곳 개미마을까지 찾아와서 사진을 찍어대는 젊은 여성 여행객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솔밭길 능선.이곳에서는 가을이 빨리 오지 않는다.아주 느려 보인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에도 인왕산은 바위와 소나무만 보인다.
사실 오늘의 목적은 인왕제색도가 그려진 방향인 청와대 옆인 궁정동까지 가 볼 계획이다
인왕에서 바라 본 북악.솔잎도 단풍이 든다.
서울 성곽길을 따라 정상인 백악산을 지나
삼청공원으로 내려 와서 청와대 앞을 지나 광화문으로 간다.
기차바위 직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개미마을 전경이다.
집들이 새 둥지 속에 놓여진 알처럼 포근해 보인다
배낭을 가볍게 들었지만 가을을 향유하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온 몸으로 가을을 느껴보기로 한다.
가을 속에도 봄은 피어난다.
모두가 떠나는 계절에 살며시 찾아 온 진달래가 오히려 애처롭다.
잠시 머물다 금방 떠날 짧은 삶이지만 햇살만이라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비봉 능선의 향로봉,비봉,승가봉,문수봉,보현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형제봉까지도...
북한산과 북악 사이의 마을들이 가을 오후에 눈이 부시다.
서울의 가을을 만끽하는 오늘은 날씨도 청명하다.
드디어 기차바위가 나타났다.
인왕제색도의 그려져 있는 오른쪽 봉우리다.가운데 큰 봉우리가 치마바위이다.
인왕제색도는 비가 그친 뒤의 인왕산 모습이라고 했지.
기차바위에서 바라보는 치마바위.
오늘은 저곳으로 가지 않는다.저리로 가면 서대문 방향이다.
중종을 향한 폐비 신씨의 애타는 사랑이
저곳 바위에 올라 경복궁을 향해 치마를 흔들었다는 애절한 이야기가 있다.
오늘의 최종 도착지는 저곳 남산 아래이다.
서울의 4내산 중에 인왕과 북악과 남산을 돌게 된다.
그 산을 울타리 삼아 개미마을 같은 서울 시내가 둥지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문 밖이다. 오늘은 문 안과 문 밖의 경계를 따라 걷는 길이다.
그래도 닫혀 있었던 인왕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열렸고
북악은 노무현 대통령 때 열렸었다.
문 안에서 권세의 가장 핵심인 과거의 왕궁과 현재의 권력이 공존하는 지역.
수 백년 동안 권력의 핵심 지역은 변치않고 이곳 북악 아래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이 아닐까?
태조 때의 막쌓기의 축조방식과 세종 때의 섞어쌓기의 모습과
숙종 때의 크고 가지런하게 성을 쌓은 모습이 한 번에 볼 수가 있다.
성 안에서 잠시 성 밖으로 나왔다.
밝게 보이는 부분이 숙종 때의 축조 방식이다.
성벽을 사이에 두고 나무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성 안의 소식과 성 밖의 삶을 주고 받는다.
이 곳을 계속 따라가면 창의문이 나온다.
윤동주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이 있다.
가을 나무들도 성벽을 마주하며 서로 안부를 묻는다.
문 밖 나무들은 성 안 소식이 더 궁금한 지 성 안으로 넘어 갈 것만 같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가진 단풍도
도성에 바짝 붙어서 적극적으로 문 안을 들여다본다.
아주 멀리 작은 북한산의 수리봉도 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팥배나무와 신갈나무 단풍이 환하다.
침엽수 틈틈이 활엽수 이파리들이 가을을 채색한다.
북한산 문수봉과 보현봉이 설산처럼 하얗게 빛이 난다.
신비스러운 영산처럼 짙은 소나무 위에서 눈이 부시다.
우리는 저 산을 천 번 이상 찾아 갈 계획을 하였고 실천 중이다.
오늘 오전에도 북아등 친구들은 저 산에서 횟수를 늘리고 있을 것이다.
화강암 하얀 봉우리와 소나무의 짙은 음영은 한폭 동양화로 보인다.
갈색은 주로 참나무과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이웃한 마을들도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서로 다투지 않고 잘 지낸다.
팥배나무 열매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산수유, 산딸나무, 산사나무 빨간 열매들이 가을 산을 풍요롭게 한다.
이 열매들을 보고 있을 산새들은 얼마나 넉넉한 기분이 들까?
연탄 100장 들여놓고 김장 100포기 해놓으면 월동준비 다 해놓은 우리 어머니처럼.
이 정도 나무 한 그루면 산새 50마리가 겨울을 배불리 보낼 수 있는 양식이다.
봄이면 하얀꽃으로 우리를 즐겁게하고 여름은 짙은 녹음으로 편하게 하고
가을엔 빨간 열매로 넉넉한 기분을 만들어 준다.
인왕을 내려와 북악으로 이어지는 찻길로 잠시 걷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가서
흥인시장으로 나가는 서촌을 만나지만
오늘은 북악의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 가기로 했다.
찻길은 북악스카이웨이라고 젊은 시절 신혼여행의 단골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였다.
찻길에서 빠져 나오니 서울 성곽길의 표지판이 보인다.
이름이 통일 되지 않아 한양도성길 이라고도 한다.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데 소프트웨어는 아쉽다.
만들기는 잘 하지만 운영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아직 서툴다.
군사 문화에서 이어진 전시 행정이 빚은 안타까운 유산이다.
시인의 언덕인 이곳에는 윤동주 문학관과 시비가 있어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졸참나무의 단풍이 가을을 풍기고 있다. 단풍이 곱기로는 화살나무와 붉나무가 알아주는데
이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규식 경무관.
1.21 사태
김신조 사건.
북악 오르는 입구에 핀 코스모스에서 또 한 번 가을의 서정을 느낀다.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과 가을 코스모스를 바라보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며 전선에서 고향을 그리워했던
우리 선배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듯 하다.
백악산 정상까지 972 계단은 꽤 가파르다.
때문에 이곳으로 오르기 보다 성북동이나 삼청동에서 오르면 오히려 편하기도 하다.
수경사 군인들의 순찰코스가 이제는 성곽길로 자리 잡았다.
오후 3시기 넘으면 출입이 제한된다.
눈으로 보면 아득히 먼 길도 걸어보면 잠깐이다.
눈은 겁쟁이이지만 발은 용감하다.
결국은 용감한 발이 임무를 완수한다.
눈이 보여 주는 정보에 겁을 먹으면 발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하늘을 배경으로 한 풍경을 오리면 모두가 작품이 된 듯하다.
감나무의 감이 가을스럽다.
감나무 가지는 약해서 함부로 올라가면 다친다.
그래서 감을 딸 때는 긴 장대를 이용한다.
음~~342 m였군.
길은 이어진다
담쟁이가 피를 뿌리 듯 성벽에 붙어있다.
온 성벽을 모두 덮을 때 까지 저들의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해마다 그들의 영토를 조금씩 넓혀갈 것이다.
성을 쌓을 때 공사를 담당한 인물들의 이름 등을 돌에 새겨 두면
부실공사도 방지하고, 공사를 한 사람들의 노고도 기리는데
글씨를 잘 알아 볼 수가 없다. 예전에 해 본 탁본이라도 해 볼까?
이곳에도 철 모르는 개나리가 얼굴을 내민다.
한 번 엉키면 삶이 뒤틀릴 수가 있는데 무슨 사연으로 이 가을에 꽃을 피워야 했을까?
세월호의 아픔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봄이면 희망과 설렘이 가득했을 노란 꽃이 이 가을에는 더욱 처연해 보인다.
숙정문 방향으로 내려 가는 길.
이 문을 나서면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오며 그 계곡은 참으로 조용하고 아늑하기도 하다.
삼청계곡인데 물이 푸르고 산이 푸르고 사람의 마음도 푸르다는 삼청이다.
오늘은 북한산으로 가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소나무의 단풍을 살펴보았다.
소나무는 2~3년 만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된다.
늘 푸르게 보이지만 때가 되면 소나무도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된다
뒤틀린 모습으로 옆의 소나무와 칡덩굴 엉키듯 보였지만
자신만의 줄기를 고수하였다.
의도적으로 연리지를 만들려고 묶어 놓은 것 같았다.
동일 DNA이기에 언젠가는 한 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인위적이기에 탐탁지 않지만...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탐욕을 거부하며
나무들은 자신의 길로 나아가고 있어 보인다.
소나무의 투쟁에 응원을 하고 돌아선다.
아까시 나무도 하늘이 배경이면 그림이 된다.
삼청공원으로 다 내려와서 어느 음식점 마당에 있는 감나무가 인상적이다.
까치밥으로 남겨둘까?
청화대 앞길에서 여경이 법에 어긋나지 않게 찍어준 사진이다.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부탁하였다.
드디어 인왕제색도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저 모습을 좌우에서 양손으로 좁게 눌러보면 인왕제색도의 그림이 될 것 같다.
물론 산 풍경만으로.
지금은 무궁화 동산으로 변한 궁정동 자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곳이다.
영조 시절에 86세까지 살다 간 겸재 정선의 평생 친구가 죽자
함께 지낸 시절을 추억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친구 이름이 동문수학한 이병연이라고 들었다.
청와대 앞에서 3호선 경복궁역으로 가는 길.
잠시 고궁박물관에 들렀는데 고궁 마당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무슨 호사인가.
가을밤의 궁중 음악의 향연에 한참동안 머물렀다.
음악회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나오니 어둠이 완전히 내려 앉았다.
광화문의 뒷모습이다.
광화문의 앞쪽이다.
일요일에는 세종문화회관 결혼식을 보고 덕근이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한참 머물기도 했는데
요즘 고바우 전시회도 함께 전시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하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으로 나오니 또 국악 공연이 한창이다.
축제 기간도 아닌 듯 한데 이렇게 많은 행사가 가을을 수놓고 있다.
조금 더 걸어 청계천 동아일보 앞에 오니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음악회가 또 열리고 있었고
가수 이상은의 슬픈 노래에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자아내고 있었다.
서울의 가을을 만끽하고
문화의 향연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다.
모두들 아픔을 잊지 말자고 하는데
하루 빨리 가슴 속에 묻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조금씩 추억 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