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정동윤 2015. 2. 1. 20:33

내가 가지 않아도 산은 외로워하지 않는 것처럼
친구가 오지 않아도 애태우며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불광동 토요일 9시 출발이라는 떠나는 시간을 정해 두었다.

 

"꼭 보아야 할 풍경이
거둬내야 할 거품이 남아 있어
설레며 아침 해를 기다리다
새벽잠 못 이루지 않았는가?"

 

덕유산으로 가자는 새벽 약속으로 간밤에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였다가
가까스로 잠이 든 새벽잠을 휴대폰 알람이 힘들게 깨워 주었다.
안양역에서 천수와 근엽이와 합류하였고, 근엽이가 핸들을 잡은 뒤 곧장
무주의 덕유산으로 내비게이션 좌표를 찍고 출발하였다.

 

올 겨울 서울의  북한산에서는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아
겨울 산행이 허전하였던 북아등으로써는
덕유산행을 기획한 불이토의 합류 의견을 기꺼이 동참하기로 하고
덕유산 매표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오전 10시쯤 무주리조트에 도착해보니 먼저 온 성호가 입장권을 매표해 놓았으나
비행기 연착으로 기다리는 할 일 없는 여행객처럼
읍내 오일장 가려고 시외버스 막연히 기다리는 아낙네처럼
낯선 이국땅에서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려고 기다리는 무모한 시간처럼
붐비고 소란한 대기실에서 3시간을 넘기고 나서야 곤돌라에 배낭을 실을 수 있었다.

 

그 길고 지루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주변과 먼 풍경들이
환상처럼 보이며 다가왔고 나는 가슴 깊이 큰 호흡으로 들어 마시기도 하였다.
가야산이 보이고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맑은 날씨까지 도와주었다.
山分水合!
산은 갈수록 나누어지고 물은 갈수록 합쳐진다.
입으로 담을 수 없는 풍경은 카메라의 앵글로 잘 오려내는 근엽이에게 맡기고
우린 눈으로 마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설천봉,향적봉,중봉,오수자굴,백련사를 거쳐 구천동 계곡을 따라 구천동탐방지원센타에서
산행을 마무리 하였고, 경화와 근엽이는 택시로 차를 가지러 성호와 함께 갔다 왔고
아시안컵 축구대회를 전반전만 시청하며 뒤풀이를 한 뒤 모두 차에 올랐다.

 

오늘은 슬쩍 700회 북아등 얘기를 끼워 넣을까 한다.
기차가 모퉁이를 돌아갈 때는 긴 기적 소리 한 번 울리고,
검은 연기로 존재감을 알리며 달려가는 모습처럼
북아등도 700회를 광고하며 달리고자 한다.

 

오늘의 덕유산행은 북아등 698번째,
2월 14일이 700회 산행하는 날이다.
한때는 환승역처럼 붐비며 알아주던 북아등 역이
이제는 세월이 흔적이 많이 묻어있는 간이역처럼
따가운 햇볕도 피하지 않는 늙어가는 역무원 몇 명이 역사를 지키며 가꾸어 가고 있다.

 

기적 소리 울리며 700회 모퉁이를 돌아서 천 번의 종점을 향에 달려가는 북아등,
끝내 잊어버리거나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아 주말마다 쌓아 올린 여정으로
황혼 이후에는 흔적처럼, 아니 업적처럼 공유하며 추억하고 싶다.

 

마침 이날은 부부와 함께 산행하는 날이다. 주말마다 북아등을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부부가 함께하는 산행으로 정하며 매월 두번 째 주말은 아내들도 참석을 한다.
대수롭지 않는 일도 천 번을 계속하면 위업이 되고, 사소한 일도 천 번을 반복하면
중요한 일이 된다.7부 능선을 오르는 날이기에 소리 한 번 지르고 가려는 뜻이다.

 

2월 14일 토요일 아침은 평소처럼 불광동에서 9시에 만나 산행을 하고
구기동 자주 가는 쌈밥집에서 시루떡 나누어 먹고 술 한 잔 마시려고 한다.
덕산회 오대산행에 동참하지 못하였거나 북아등에 관심을 가졌던 친구들을 초대한다.
2002년부터 주말마다 출발한 기차는 꽤 많은 친구들을 실어 날랐고 
유서 깊은 간이역처럼 조용히 700회의 의미를 새기려고 한다

 

안구건조증으로 인한 눈물이 아니라
작은 인연도 소중하게 관리하지 못한 진한 아쉬움이 겹쳐
다시 한 번
"꼭 보아야 할 풍경이
거둬내야 할 거품이 남아 있어
.....<중약>...
바윗길이 살가운 북한산 찾아"가는것이다.

 

698회 북아등,
무주의 덕유산 눈 산행을 함께 한 불이토 친구들과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