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등 713
자주 다니던 길도 새롭게 보이는 때가 있다.
심경에 변화가 있거나, 이 길을 처음 온 사람과 함께 걸을 때
아니면 일부러 집중해서 다시보기를 할 때 그 길은 낯선 길처럼 보인다.
오늘은 습관적으로 다니던 길에서 아카시향이 진하게 느껴져
주변의 아카시나무를 천천히 다시 보게 되었다.
독박골을 지나 막걸리 바위에 올라가서 근처의 산을 둘러보니
아직도 아카시나무가 주변 산에서 완전히 퇴출되지 않았고
산기슭에서 자신의 몫을 단단히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까시나무/정동윤
서초동 몽마르뜨공원,
좀작살나무 열매가 연보라로 바뀔 즈음
혼자 걷다 친구가 들려 준
아까시나무 이야기가 생각났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우리의 민둥산에서
질소를 끌어안고,
무너지는 흙덩이 움켜잡으며
황토색 산을 풀색으로 물들이며
노동으로 부르튼 입술엔 꿀을 발라 주었고
어디서든 잘 자라는 땔감으로
온돌과 밥상을 따뜻이 덥혀 주다가
사라질 때를 잘 아는 매미처럼
홀연히 떠나려 하니
잡목이라며 손가락질까지 받는다.
무덤에 비석 하나 세우지 못하고
화장터에서 불 태워질 우리가
바로 사방공사용 아까시나무라고.
....
봄은 오월만 되면 여름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 같다.
삼월은 겨울에 빌려 주고 사월 한 달 동안 온갖 꽃을 피우고는
일찍 은퇴하여 산 속 깊이 숨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봄이 꼬리를 놓지 않고 피워주는 병꽃나무가 남아 있어서
봄 산의 여운을 즐긴다. 처음 피어 날 때는 노랗게 보이다가
조금씩 붉은빛으로 변해가는 길쭉한 병을 닮은 꽃이 반갑다.
진달래처럼 척박지에도 잘 자라는 나무라 유심히 보고 다닌다.
이 꽃이 가고나면 여름이 성큼 찾아오리라.
어느새 우리는 비봉 능선을 지나 진관사 계곡으로 내려간다
이 무렵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철새가 있다
그 철새의 소리가 애처롭게 들리는 이유는 남의 둥지에 맡겨놓은
새끼들 걱정에 산 구석구석 파고드는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다.
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는 봄은 봄도 아니다.
그 애잔한 울음소리와는 달리 탁란으로 부화된 새끼들은
타고난 생명력으로 주인 집 알이나 갓 부화된 다른 새끼들을
본능적으로 둥지에서 밀어내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라고 듣고 싶지만 ‘홀딱 벗고 홀딱 벗고’로 들리는
이유는 그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더위를 피하며 숲길을 따라 물푸레산장에 도착했다.
배낭을 풀고 자리를 잡고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근다.
물푸레나무의 새로 난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푸른빛으로 보인다고
물푸레나무라고 하며 재질이 단단하여 곤장이나 방망이로 만들기도 한다.
수피가 얼룩얼룩한 것은 꼭 생강나무를 닮았다.
세종대왕과 광해군이 안질로 고생할 때 이 나뭇가지를 삶아 치료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물푸레산장까지 오면서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의 집권과 대북파의 횡포,
인조반정시 돈화문 수문장의 역할을 이야기 하고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낀 당시 조선의 외교가 지금의 현실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과 광해군이 황폐해진 궁궐공사를 무리하게 추진하여
4대강 공사처럼 백성들 원성이 높았으나 외교는 평가할 부분이 있음을
주고 받으며 비봉 능선을 넘었다.
요즈음 중국의 부상이 “made in china”에서 ‘made for china’로
바꾸어 가는 현실을 직시하며, 조선 후기 실학을 포용하지 못하고
성리학에 매몰된 정치가 가져 온 뼈아픈 교훈을 주고 받았고
또 춘추오패의 조직과 흥망성사에 대한 고사를 나누다보니
금방 물푸레산장까지 왔다.
이곳에 굳이 정자를 마련하지 않아도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마음도 푸르지는
물푸레산장은 지붕과 기둥이 없어도 편안한 여름철 우리의 쉼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