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정동윤 2015. 7. 20. 08:05

북한산의 인수야영장
금요일 저녁 야영을 하고 토요일 북아등을 하자는 의견에 기꺼이 동조하고
금요일 오후 6시에 천수와 함께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타고 수유역으로 향했다.

 

그시간 한주,근엽,영환이는 불광동에서 만나 산성계곡을 시작으로 위문으로 올라
백운산장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빨리 합류할 생각으로 우이동 버스정류장에서 도선사까지
택시를 타고 그곳에서 깔딱고개를 30여분 부지런히 걸어 야영장으로 갔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야영장 03번을 배정받아 야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등산은 우리를 충전시켜 주기도 하지만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도 한다
특히 야영은 충전도 휴식도 시켜주지만 숨어있는 개인기를 잘 드러나게 한다.

 

야영을 하면서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도시의 밤하늘은 별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만을 느글느글 강조한다.
깊은 산 속에서는 친구들만이 존재의 의미이며 지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계곡과 능선을 거쳐 걸어온 뒤에 참나무숲에 자리 잡은 인수야영장에서는
영혼 가득히 충만해지는 사색과 명상을 겸할 수도 있다.
딱 한사람이 들어가는 침낭 속에 눈을 감고 누우면 무덤 속처럼 아늑해진다.

 

어둠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 바람은 떡갈나무잎 스치는 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달빛에 물들면 야영은 신화가 되고, 햇볕에 빛이 바랜 배낭은 북아등의 연륜이 된다

조금씩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열심히 하고 싶다.
북아등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도 늦은 만찬 중에 진지한 의견이 오고갔다.

 

고기를 굽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간간히 들리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북아등의 긴 여정을 설정하는 의논이 신중하다.
비록 끝을 규정할 수 없지만 방향도 없이 무의미하게 나아갈 수는 없음을 전제하고,

어느 한 지역을 다녀가는 원포인트 여행이나 산행보다 한 곳에 2~3일간 머물면서
그 지역을 천천히 탐방하고, 산행하고, 좋은 맛집을 찾아 즐기며
야영도 하며 삶의 두께를 늘려보자는 데로 큰 방향을 정하고 술잔을 들었다.

 

올 여름 창촌으로의 여름나들이는 부부 동반으로 결정하고 세부 일정은
다시 조율하기로 하였다. 나도 조금씩 야영술을 익혀 길 위에서의 생활을 즐겨야겠다.
아, 좋다 소리를 반복하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 인수봉보다 깊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신선한 공기와 맑은 바람은 천수를 일찍 깨웠고, 과음한 한주와 영환이는 늦잠을 즐겼다.
주변을 정리하고 아침을 준비하며 아침 산행을 염두에 두었지만 한주의 과음은 쉬 잠을 떨치지 못한다.
깨워서 아침을 먹고 휴식 모드를 준비하는 중에 병욱이가 대남문으로 올라온다고 알려준다.

 

결정,정리하고 출발한다!

후다닥 정리하는라 갑자기 바쁘다.이 틈에 내 그릇 하나가 다른 배낭으로
갔음을 집에 와서 지적 당하고 나서야 알았다.

아마 한주 배낭에 들어갔으리라 예상한다.
배낭을 지고 다시 위문으로 올라 주능선을 타고 동장대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병묵이와 만나기로 하고.

 

만찬의 반주와 조찬의 해장술은 같은 무게의 배낭을 더욱 무겁게 하였다.
18키로 전후의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는 한주는 악전고투 한다.

알콜은 눕자고 하고 머리는 가자고 한다.
땅만 보고 가다가 동장대를 지나쳐서 대동문에 닿았다.

천수와 만난 병욱이도 이곳으로 다시 온다고 하였다.

 

대동문에 도착하니 한주의 코 밑에 빨간 꽃이 피었다.
근처에 있는 원추리꽃 두 송이가 한주의 붉은 콧물을 보고 애틋해 하였다.
우리는 대동문에서 점심을 먹고 산성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아까 본 원추리꽃을 다시 보았으면 하면서.

 

원추리꽃의 꽃말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흐린 날씨는 하산의 부담을 덜어주었다.땀을 그다지 많이 흘리지 않았다.

점심에 병욱이가 들고 온 막걸리를 곁들었기에
내려오는 걸음걸음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땀에서도 알콜의 성분이 물씬 풍긴다.천천히 더 천천히...

 

산을 다내려와서 다시 한번 원추리꽃을 보았다.
원추리꽃에 다가가서 당신의 꽃말은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하고 속삭이니 꽃이 웃는다.
재빨리 한주를 불러 원추리꽃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만원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의 끝은 영등포구청역 인근의 당구장,
한주는 집안의 일이 있어 집으로 가고, 영환이도 돌아가고 ,우리는 프로투에서
당구를 즐기는 친구들 틈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