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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 일기

능선 정동윤 2016. 4. 12. 23:58

경운궁 일기/정동윤

 

오얏꽃 향기 그윽한

경운궁 뜰 안

봄비에 우산을 드니

카메라가 불편하다.

더 쓸쓸해진 즉조당엔

떠난 용의 체취가

접힌 분합문 문짝마다

눅눅하게 묻혀나오고,

 

주저앉고 싶은

오백년 왕조의 무게

중심에서 밀려난

붉은 속 광대싸리가

외세의 역사 왜곡에

사간원 정언처럼 외치다

내장 모두 들어냈고,

 

고종의 손결 묻어있는

칠엽수 높은 가지

위협받은 세월에도

소망을 놓지 않아

가지에 앉았다 떠난

그 많은 텃새들의 충정에

밤마다 흐느꼈다.

 

봄비에 고개 숙여

유현문 담벼락 지나니

제국의 마지막 여인

그 외로운 배웅 느끼며

슬픈 경운궁 큰 문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