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연휴 첫 번째 나들이

능선 정동윤 2019. 5. 18. 12:53

연휴 첫 번째 나들이

 

최근 고종실록과 순조실록의

마지막 쪽을 읽고 난 뒤라

창의문 넘어 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에 문득 가고 싶어졌다.

그곳의 소나무도 보고 싶어졌다.

 

연휴 첫날, 삼성 본관 빌딩 뒤편

진주회관에서 꽤 유명한 걸쭉한

콩국수로 마음에 점을 하나 찍고

남대문 시장 안 갈치골목을

마주보는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아내와 의견을 모은 뒤

7022번 초록 버스를 탔다.

석파정 지나 구기동 방향으로

가는 버스다.

도착해 보니 가는 날이 쉬는

날이라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미술관이 휴관이란다.

석파정은 이곳을 통과해야만

볼 수가 있다.귀한 풍경이라

쉽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일까.

 

가까이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들러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고

그의 일대기를 동영상으로 시청하였다.

이번이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언덕 위로 올라가 짧고 낭만적인

"서시"를 밤하늘 별처럼 음미하며

가을 공기를 깊이 들어 마신 후

알록달록 물들고 있는 인왕산의

수성동 계곡으로 빠져들어갔다.

 

여름 옷을 입어도 견딜만하고

가을 옷을 입어도 괜찮은 날씨다.

파란 하늘 아래 아무리 걸어도

땀이 날 것 같지 않은 뽀송뽀송한

오후의 산길은 즐겁다.

귀성객들은 서울을 떠나지만

우린 옛 서울의 향기를 맡으며

서촌 뒤편,

인왕산 자락 수성동 계곡과 함께

하기 위하여 찾아왔다.

 

지난 일요일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

추석 예배를 일찍 본 후

올 추석은 가족별로 자유롭게

보내기로 하였다. 떠난 조상보다

남은 후손의 삶도 존중돼야 한다.

나도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처럼 편안하게 가을 나들이를

시작하였다.

 

위항 문학의 산실이었던 송석원

시사회의 중심인 수성동 계곡의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기로 한다.

대금의 명인 정약대,

시인 이상과 화가 구본홍,

황소의 화가 이중섭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

몽유도원도의 꿈을 제공한

안평대군, 세종 이도 등의 삶이

담겨있는 인왕산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초가을 날씨 속에

우리를 반겨주었다.

 

맑고 깨끗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우리도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가

마취에서 깨어나듯이 천천히

숲에서 걸어 나왔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가을 오후,

황홀하게 헹구어진 마음으로

내년 이때쯤 다시 올 수 있으리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명절 연휴의 첫날,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일상의 근심을 내려놓고

더없이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아내와 함께 가을의 인왕산 지나

골목길 서촌을 거쳐

파란만장하게 견뎌온 광화문,

불타 버린 뒤에 다시 태어난

남대문을 지나 집에 오니

한가위 앞둔 둥근 달이

남산 위로 둥실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