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그럴 때도 있었다

능선 정동윤 2019. 5. 19. 19:53

그럴 때도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밤

덕수궁 담길 걸으며

들풀처럼 살겠다며

TV 시청도

핸드폰 보기도 줄였다.

 

생계를 위한

딱딱한 만남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체면치레할 시간도

빗물관으로 흘러갔다.

 

자주 걸으며

좋아하는 일이나

미루어 둔 일을 찾아

몰입 시간을 늘리며

아이들과 놀기도 했다.

 

놀랍게도

혈당수치가 내려갔다.

이기주의를 경계함이

또 다른 이기주의 같지만

조금씩 뿌리를 내렸다.

 

허리띠처럼

풀어 버릴 수 없는 나이는

더 단단히 껴입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에

밑둥은 제법 굵어졌다.

 

그 마음 아직 변치 않았다.

그때 나는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좋아하는 시 구절 일부를 음미하며

스스로 다듬기도 하였다.

 

내가 좋아했던 내용은

"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에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고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른 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은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