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국이 없는 식사
능선 정동윤
2019. 5. 19. 21:18
국이 없는 식사
식사 전의 나의 기도는,
잘 먹겠습니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 한 잔 위로
눈 내린 아침의 맑은 공기가
새하얀 기분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하소서.
겨울밤 귀갓길에 사 온
호밀 식빵 한 조각에는
물 흐르듯 흐르는
세상의 물결을
혀끝에 감돌게 하소서.
바나나 하나에도
열대의 햇살과
매일 찾아온 빗줄기의
오랜 사색이 일구어낸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소서.
무엇보다 국이 없는
조촐한 식탁에도
한 끼의 의미를,
끼니마다 삶의 고마움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