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겨울, 애련지

능선 정동윤 2019. 5. 19. 21:29

겨울, 애련지

 

 

기습적인 북극한파가

한반도를 덮치는 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는 날

창덕궁 후원으로 가 볼까?

 

그 옛날 왕과 왕비는

오늘처럼 문고리 쩍쩍 붙는 날

방문 꼭 닫아걸고

화롯불 쬐며 꼼짝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아니 되옵니다" 신하들 물리치고

혹한의 겨울 후원 거닐다

애련지 빙판 위의

썰매 타고 노는 나무 그림자

넋 놓고 바라보지 않았을까?

 

왕실의 영광은

세월의 얼음 밑에서

궁궐 해설가 입술 타게 하고

애련지 빙판 위엔

아직 살아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 몇 그루,

 

먼 후일

서울 시민 한 명

잠 못 들게 하는 나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