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아직은 외롭지 않다

능선 정동윤 2019. 5. 20. 20:25

아직은 외롭지 않다

 

 

손녀와 딸과 아내가

공항에 날 남겨두고

지구 저편으로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혼자 일어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외출해서 돌아오고

혼자 잠이 드는

늙은 숫사자가 되었네.

 

양말 뒤집어 놓아도

변기 물 내리는 걸 깜박해도

치약 울퉁불퉁 짜도

옷 가지런히 걸지 않아도

집안은 깊은 바다처럼 잠잠하였다.

 

그래도 이상하다,

알람보다 일찍 일어나고

내일 나가서 할 일

잠들기 전에 준비해 놓고

설거지도 미루지 않게 되다니.

 

이따금

손녀의 콩콩 발소리,

손녀 약 올리는 나를

모른 척하며 보는 딸의 눈빛,

아내의 구시렁 잔소리가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모두 와락 달려들 것 같다.

 

아직은

가을의 분주함으로

알록달록 하루를 가득 채우지만

낙엽 지고 무채색 겨울이 오고

손발이 시리고 가슴도 써늘해지면

그때는 달라지겠지?

 

아직은 아직은 가을, 그닥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