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달팽이의 자유

능선 정동윤 2020. 10. 1. 21:17
달팽이의 자유

비 갠 뒤에
달팽이 한 마리
축축한 숲 덤불에서
숲길 가운데로 나왔다

집단으로 살아
자유가 그리운 개미들
달팽이 이동식 주택이 부러워
연예인 보듯 모여들었는데

평생을 노력해도
자기 집 한 칸 없는 일개미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달팽이 주택을 둘러싸니

당황한 달팽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봐도
인기에 앞이 막혀
빠져나갈 수가 없네

개미들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달팽이
가볍게 들어 올려
따뜻한 돌 위에 놓으니

머무는 위치가 바뀌어도
달팽이는 느릿느릿
주위 살피며 집을 세울 듯
접착제를 내뿜는다

함께 들려온 개미들
페로몬을 놓쳤을까
우왕좌왕 맴돌며
길 찾기에 바쁘지만

낯선 길에서도
혼자 사는 달팽이는
머무는 곳이 집,
좁아도 걱정하지 않는다.

저기, 역전 한구석
골판지 상자 집에 누운
덕지덕지 묻어있는 자유,
왜 그 자유가 남루해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