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숲이 조용해졌다/정동윤

능선 정동윤 2021. 5. 15. 13:42






숲이 조용해졌다./정동윤


인왕산 유아숲의 주인공은
단연 메타세쿼이아다.
쭉쭉 빵빵 의장대 같은 나무들
그런데 그 꼭대기에 까치집 세 채가
숲의 본부처럼 당당하다.

제비꽃 필 무렵
아이들이 숲에 첨 왔을 때
낯선 손님 경계하듯
무리로 나와 요란 떨곤 하였다.

가끔 유기견 무리들 지나갈 때나
명상인들 찾아와 떠들 때도
까치들의 우렁찬 목소리
이 가지 저 가지 날아다녔다.

요즘 점심 후
혼자 숲 산책하며
뽕나무 지팡이 휘젓고 다니다 보면
심술궂은 이웃집 늙은이로 보이는지
꽁지 보이며 슬슬 피해 다닌다.

황사가 심하거나
비가 온 뒤에
아이들이 숲에 오지 않을 땐
어린 까치들이 놀이터 밧줄 위로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며 놀기도.

까치 한 마리
취직하여 첫 출근하는지
말끔한 정장으로 막사로 찾아와서
뽐내며 왔다 갔다 하지만
치, 난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오늘 오후 몹시 무더운 봄날
한가로이 숲을 거니는데
까치 몇 마리가
청서처럼 나뭇가지를 타고
내 뒤를 밟고 있음을 눈치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