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북촌 거닐다

능선 정동윤 2022. 8. 1. 23:25

북촌 거닐다(우리문화산책)/정동윤


계절은 걷기 좋은 봄날
안국역 6번 출구에서 5 명이 만나
종로 경찰서 옆 인사동으로 들어갔다

가난해도 행복했던 사나이
귀천을 노래한 천상병 시인을 소환해
그 부인이 경영했던 카페 귀천 앞에
도착했으나 문 닫힌 카페
잠시 머물며 고인을 회상한 뒤 빠져나와

구도장원공 이율곡의 서울 집터로 가니
오래된 회화나무는 아직도 겨울인지
초록의 나뭇잎이 눈에 띄지 않았다
양반나무 대추나무처럼 잎이 늦지만
학자수 사연 많은 이야기 나누다

갑신정변 삼일천하 병조참판
홍영식의 우편총국으로 왔다
가장 오래된 우체국의 마당에서
만난 자작나무들은
삶이 괴로운가 검은 얼룩이 안쓰럽다
추운 지방이 편안한 북쪽의 나무가
더 더워진 지방에서 힘들게 사는 게.

그 이웃의 조계사 경내는 연등의 물결
마당엔 예불을 기다리는 신도의 물결
회화나무도 수송동 백송도 행사에
동원되어 또 다른 역할이 익숙하니
하늘을 가리는 연등 행렬의 끝을 잡고
늘 하던 일처럼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기미독립 선언문을 인쇄한 보성사터 옆
숙명여학교 신흥무관학교 표시가 있고
작은 공원엔 초록의 봄빛에 일렁인다

고려말 충신 목은 이색 영정 모신 건물
후손들의 행사가 분주한 가운데
여말 충신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도
함께 소환하여 보았다.

목은 이색:
백설이 자자 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 온 梅花는 어느 곳에 픠엿는고.
夕陽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야은 길재: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포은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반가워하는 목은의 후손들과 인사하고
골목길 빠져나와 만나는 명물,
홀로 앉은 소녀상은 건너편 건물의
일본대사관 바라보며 무슨 생각 할까

한참을 머물며 주변을 살피다
차도에 섬처럼 서 있는 동십자각을
바라보며 건널목 건너갔다.
사라진 서십자각과 더불어
경복궁의 권위의 상징인데
어쩌다 차도 안으로 떨어져 나와
홀로 선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북촌으로 들아가는 길목의 종친부 건물
경근당과 옥첩당은 힘든 시절
수도통합병원으로, 기무사로 권력의 횡포에 눈치보며 밀려다니다 이제야
겨우 안착하여 태평성대를 보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
세 그루 비술나무도 경근당 옆의
잘 생긴 반송 한 그루도
이젠 고난의 시절 다 보낸 뒤의
안식일을 지내는 듯 편하게 보였다.

99칸 윤보선 집과 백년 넘은
안동교회는 들어갈 수 없어 생략하고

비탈길 올라 옛 경기고 자리가
지금 정독도서관으로 남아있는 것은
명문고 선배들의 힘을 보여준 역사,
조선 말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진경산수화의 최고봉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판화가 걸린 운동장 돌아
북촌의 인파들 사이로 빠져나오면

계유정난의 피를 재로 덮었다던
재동의 헌법재판소 뒤뜰의 백송을
담 넘어 멀찍이 바라보니
인내의 대원군과 조대비가 은밀하게
소근거리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 하였다
결국 고종이 등극하고
세도정치 안동 김씨들이 물러나고
세상은 열강의 파도에 휩쓸리는데

코로나19 끝자리가 시작되는 주말
대원궁의 안방 운현궁을 거닐다
노안당 마루에 앉아 쉬며
뜰의 모란을 바라보며 봄을 만끽하였다

운현궁을 나와서 익선동의 좁은 골목을
길따라 구경하던 배고픈 사나이들은
할머니 칼국수집에 들러 서둘러
칼제비를 시키고 막걸리 한 잔 마시며
만두도 맛보고  산책을 마무리할까 하다가

2 시간 정도 걸었지만 조금 아쉬워
창덕궁을 거슬러 올라가 회화나무와
750년 향나무 앞에 머물다가 궐내각사를 거쳐서 인정전 선정전으로
대조전 앞의 댓돌에 앉아 한참동안 이야기 나누며 안국역으로 와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