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가을빛 첫사랑

능선 정동윤 2022. 11. 11. 11:23

가을빛 첫사랑/정동윤


초등 4학년 11 명의 남학생
오늘 나의 인왕산 동행자들,
목표는 독립문 공원에서
무악재 하늘다리 건너
인왕산 중턱 '해골바위'까지,
자유롭게 걷되
전체는 흩뜨려지지 않도록
주의 사항을 다짐하고
쌀쌀한 가을 산을 오른다.

하늘다리 건너
오동나무 계단까지 오는데
5 명의 속도가 자꾸 쳐진다.
그중 한 친구가
같은 반 여자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
생각을 모으느라 늦었단다.

내가 만들어 준
강아지풀 토끼가
손끝 하트처럼 보이고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잎도
모두 하트로만 보인다는
안경 낀 고백의 주인공은
해골바위까지 오는 동안
계단을 몇 번이나 헛디뎌
넘어질 뻔하였다.

해골바위 아래
경사진 너른 바위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햇살과 하늘과 바람을 느끼며
고요한 명상을 끝낸 뒤에도
그들은 따로 뭉쳐 고백의 시나리오를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

잠자코 듣다가 나는
류시화 시인의 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를 들려주었더니
환호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한 번 들려주었더니
벌떡 일어나 손뼉치기도 하였다.
다시 들려 달라는 요청으로
아주 천천히 따라 하도록 들려주니
몇몇은 외울 만큼 읊기도 하였다.

초등 4학년의 고백 계획에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사랑의 날개를 달고
'고백을 받아주면 키스해라'
'학교에서 결혼식도 해라'
'아들 낳으면 이름은 무얼로
지을 거냐'라는 질문까지 나왔다.

오늘 두 시간  숲 해설은
가을 햇살에 물든
초등 4학년의 진지한 사랑,
안산과 인왕을
이어주는 하늘다리처럼
초봄과 늦가을의 만남,
감미로운 추억으로 남는다.

나중에 생태교육 일정이
같은 학년들 대상이어서
일부로 그 반을 바꿔 맡았는데
결과의 얘기를 들어보니
상대 여자 아이를
고개짓으로 알려주던 친구가
"한 방에 까였다"라고 하였다.
쟤는 너무 자주 고백하는데
모두 거절한단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도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