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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수사자의 여유
능선 정동윤
2022. 12. 5. 11:35
늙은 수사자의 여유/정동윤
고기를 씹으면
반은 잇속에 끼고
반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찬물을 마셔도
나무에 기대기만 하면 졸리고
구름만 보면 눈이 감긴다
사냥 나갈까 쉴까
선택하라면
곧바로 쉬고 싶다는 몸짓
잠시 좀 걸을까 물어도
한 일도 없었는데
쉬어야겠다며 그늘 찾는다
머리칼이 가늘어져
정수리 훤히 보여
햇살을 피해 다니지만
평지를 걸어도
땅바닥에 걸려 휘청이고
오르막은 느릿느릿 걷는다
가끔 천둥소리에
뛰고 숨고 피하며 허둥대다
자리 잡으면 잠잠하다
일상이 불편하고
몸의 반응이 좀 늦어도
신세 지지 않으려는 자존심이
늙은 수사자의 여유로
직접 사냥하지 않아도
그늘 좋은 나무 골라 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