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능선 정동윤
2011. 8. 18. 14:0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소리는 울타리 너머 아시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 춤만 추고가네
나비야 제바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자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