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농무/신경림
능선 정동윤
2011. 8. 18. 14:19
농무/신경림
징이 울린다.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것은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이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쳐박혀 발바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내에게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하고 어깨를 흔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