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능선 정동윤 2011. 8. 18. 14:49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 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리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처럼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