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밥그릇/정호승
능선 정동윤
2011. 8. 19. 08:01
밥그릇/정호승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홡고 또 홡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홡다가 그만둘꺼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을 홡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홡아 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 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 보았나
개가 홡은 밥그릇을 나도 홡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