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주용일
능선 정동윤
2011. 8. 22. 10:48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주용일
빈터에 누렇게 바랜 책들을 태운다
책장마다 깃들었던 태양의 날숨이
노랗게 토해진다. 불꽃 속에서
활자로 박힌 숱한 영혼의 흔적들이 날아 오른다
찰라와도 같은 생의 마지막 길에서
활자들이 꼼지락거리며 뒤척이며
뜨거워라 무서워라 소멸로 가는 길을 묻는다.
이승과 저승의 뒤바뀜처럼
검은 활자가 희게 되고 흰종이가 검게 변한다.
많은 정신들이 종이 위 검은 육신을 얻었다가
하얀 사리를 남기며 사라지고 있다.
불꽃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어
벌겋게 얼굴 익히며 둘러선다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정신들,
푸석이는 한 줌 재로 감나무 밑거름이 될
불타는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