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빈집/설동원
능선 정동윤
2011. 8. 22. 11:07
빈집/설동원
바람 자고 간 곳에 하늘 이불 깔려 있다.
풀들 늦잠을 자고
귀먹은 문고리 구부린 채 묵상에 들고
쇠스랑은 옛 주인 손길 잊지 못하고
호미, 삽, 굉이 한 촉의 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 건네기 어려운 말이 있고
건너기 어려운 강이 흐르고 있다 심심잖게
뒷마당 장독대에 옛주인 체온 스며들고
툇마루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썰린다
담배 부스러기처럼 옛이야기가 날리고
제 그림자에 놀라 달을 보고 짖어대던
개의 밥그릇에는 얼지 않은 눈물 고여 있다.
눈부신 것들은 잠들고
빛을 잃은 것들만 남아 빈집을 지킨다
새들 그리움의 날개짓하며 울다 떠나고
풀벌레 빈집 막장 그늘에 남아
서러움을 뜸질하면
내 마음 밑뿌리부터 아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