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숨어 사는 즐거움/조용우

능선 정동윤 2011. 8. 24. 13:53

숨어 사는 즐거움/조용우

 

 

가끔은 숨바꼭질처럼

내 삶을 숨겨두는 즐거움을 갖고 싶습니다

전화도 TV도 없고 신문도 오지 않는

새소리 물소리만 적막의 한 소식을 전해 주는

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

내 소란스런 흔적들을 모두 감추어 두겠습니다

돌이켜보면 헛된 바람에 불리어 다녔음을,

여기저기 무지개를 쫒아 헤매다녔음을,

더 이상 삶의 술래가 되어 헐떡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적막 속으로 꼭꼭 숨어들어

홀로 된 즐거움 속에 웅크리고 있겠습니다

그리운 친구들에게는 편지를 부치러

장날이면 가끔 읍내로 나가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갈 곳 없는 떠돌이처럼

갈대의 무리 속에 슬쩍 끼어들었다가

산새들 뒤를 허적허적 좆다가

해질녘까지 노닥거릴 생각입니다

내가 남은 시간들을

백지의 고요한 공간 속에 차곡차곡 쌓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