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실실허허/안차애
능선 정동윤
2011. 8. 29. 10:48
실실허허/안차애
텅 빈 숲인데
나무들의 실핏줄만 가난하게 내걸린 빈 숲인데
걸음을 들여놓을수록 숲은 가만가만 차오르고 있다
내 발걸음 뒤로 따라온 적막이 빈 숲에 깔리고
적막이 팔짱 끼고 온 꿩 울음 섞인 고요가 숲을 채운다
고요가 부축하고 온 야윈 그리움이 마른 안개처럼
휘청휘청 숲을 채운다
사실,
잎이나 꽃의 시절에는 되비치는 빛살에도 기가 진해서
색도 색인 줄 몰랐던 것이다
초록도 향기도 다 보내고 하얗게 비어서야
기억의 초록과 향기의 기억이 빈 숲에 눈발처럼 자욱하다
긴 피로와 상처를 풀어
하얀 링거빛 휴식 몇 병 쯤 자가생산 중이다
텅 빈 숲에서 풍성하게 위로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