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이성부

능선 정동윤 2011. 8. 29. 11:21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이성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살아갈수록 내가 작아져서

내 눈도 작은 것만으로 꽉 차기 때문이다

먼 데서 보면 크높은 산줄기의 일렁임이

나를 부르는 은근한 손짓으로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봉우리 제 모습을 감춘다

오르고 또 올라서 정수리에 서는데

아니다 저어기 저 더 높은 산 하나 버티고 있다

이렇게 오르는 길 몇 번이나 속았는지

작은 산들이 차곡차곡 쌓여져서 나를 가두고

그때마다 나는 옥죄어 눈 바로 뜨지 못한다

사람도 산속에서는 미물이나 다름 없으므로

또 한번 작은 산이 백화산 가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것도 하나의 질서라는 것을 알았다

다산은 이것을 일곱 살때 보았다는데

나는 수십 년 땀 흘려 산으로 돌아다니면서

예순 넘어서야 깨닫는 이 놀라움이라서

몇 번이나 더 생은 이렇게 가야하고

몇 번이나 더 작아져 버린 나는 험한 날들 넘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