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너를 사랑한다/강은교

능선 정동윤 2011. 9. 1. 10:10

너를 사랑한다/강은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 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것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을

바람이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 홡고 있는 줄

몰랐다

꽃 밖의 꽃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리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이라는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