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어느 사랑의 기록/남진우

능선 정동윤 2011. 9. 6. 12:35

어느 사랑의 기록/남진우

 

 

사랑하고 싶을 때

내 몸엔 가시가 돋아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은빛 가시가 돋아나

나를 찌르고 내가 껴안는 사람을 찌른다

 

가시 돋친 혀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홡고

가시 돋친 손으로 부드럽게 가슴을 쓰다듬는 것은

그녀의 온 몸에 피의 문신을 새기는 일

가시에 들러싸인 나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이

다만 죽이며 죽어간다

 

이 참혹한 사랑 속에서

사랑의 외침 속에서 내 몸의 가시는 단련되고

가시 끝에 맺힌 핏방울은 더욱 선연해진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저 반란의 가시들

 

목마른 입을 기울여 샘을 찾을 때

가시는 더욱 예리해진다 가시가 사랑하는 이의

살갗을 찢고 끝내 그녀의 심장을 꿰뚫을 때

거세게 폭발하는 태양의 흑점들

 

사랑이 끝나갈 무렵

가시는 조금씩 시들어 간다 저무는 몸

저무는 의식 속에 아스라한 흔적만 남긴 채

가시는 사라져 없어진다

 

가시 하나 없는 몸을 걸치고

나는 어둠에 감긴 사원을 향해 떠난다

이제 가시 돋친 말들이

몸대신 밤거리를 휩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