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나를 읽는다/손옥자

능선 정동윤 2011. 9. 7. 10:20

나를 읽는다/손옥자

 

 

캡슐 한 알을 삼킨다

캡슐은 느리게 내 몸 속을 다니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훤히 비추어 낸다

침침하고 어두운 곳 좁고 깊은 곳

암울한 곳에 엎드려 있는 것까지

몇 번을 들락거리며 밝혀낸다

그저 그냥 두면 좋은 것까지

깔짝거리며 건드려 놓는다

아문 것 같은 오래 전 이별의 자리가

아직 벌건 채로 아프다

그 어둡고 긴 터널 속을 캡슐은 다시

되씹어 간다

짜릿한 통증이 몸 전체로 퍼진다

심하게 주름이 잡혀있다

저 주름 속 어디,

상처가 있단다

그 상처를 들락거리며

누가 알을 슬어 놨는지

캡슐이 찰칵찰칵 셔터를 눌러댄다

 

알 속에 감추어진

최첨단 캡슐도 찾아내지 못하는

어떤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