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서른 고개/손현철

능선 정동윤 2011. 9. 7. 15:50

서른 고개/손현철

   -95년 7월, 만 서른이 되다

 

 

서른 고개를 넘으면

더 넓은 땅이 보이리라 생각했다

아니 최소한 가로막힌 언덕이라도

명료해지길 기대했다

강을 따라 구비구비 흐를 수 없다면

소나기처럼 어딘가에 스며들기를 바랐다

가을 들판의 곡식들이 바람에 흔들리듯

너무 뿌리를 고집하지 않더라도

밑둥의 상처만은 더 옹골차게 키우고 싶었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내가 누군가의 밥이 되기를 은근히 원했다

밥풀데기 몇이라도 그들의 핏 속에 녹아들길

설익은 밥이라도 포식하고

누가 잠시 비를 피할 처마라면 좋겠다고

 

서른이 되면 내가

들불이 번지듯 일어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강변에 낀 안개를 다 마르게 하고

이슬을 묻히지 않고 아침 풀섶을 걷겠노라

발끝으로 진흙을 밟지 않고

옷을 바꿔 입어도 같은 목소리로

시냇물을 읆조리리라

큰소리쳤다

 

서른,

아직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고

귀를 먹기에는 너무나 많은 세상의 옹알거림이

고통의 연못에서 보글거린다

 

서른

이것은 어떤 화살표에 관통당한

독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