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사십대/고정희

능선 정동윤 2011. 9. 8. 08:33

사십대/고정희

 

 

사십대의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연민도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도 길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끌어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녁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