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얼굴/김기택

능선 정동윤 2011. 9. 8. 17:07

얼굴/김기택

 

 

달팽이 지나 간 자리에 긴 분비물의 길이 나 있다

 

얇아서 아슬아슬한 갑각 아래 느리고 미끌미끌하고

부드러운 길

 

슬픔이 흘러나온 자국처럼 격렬한 욕정이 지나간

자국처럼

 

길은 곧 지워지고 희미한 흔적이 남는다

 

물렁물렁한 힘이 조금씩 제 몸을 녹이며 건조한

곳들을 적셔 길을 냈던 자리, 얼룩

 

한때 축축했던 기억으로 바싹 마른 자리를

견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