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기러기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차창룡

능선 정동윤 2011. 9. 14. 15:18

기러기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차창룡

 

 

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던 고양이를 친 트럭은

놀라서 엉덩이를 약간 씰록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북으로 질주한다

숲으로 가던 토끼는 차바퀴가 몸 위를 지날 때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가 되어가고 있다

흰 구름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

짐승들의 장례식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긴 차량 행렬이 곧 조문 행렬이었다

시체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도 소용없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태어나는 바람이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몸을 조금씩 갉아 먹는다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가족들은 멀리서 바라볼 뿐

시체라도 거두려고 하다간 줄초상이 난다

장례식은 쉬 끝나지 않았다

며칠이고 자유로를 뒹굴면서

살점을 하나하나 내던지는 고양이 아닌 고양이

개 아닌 개 토끼 아닌 토끼인 채로 하루하루

하루하루 석양만이 얼굴을 붉히며 운다

남북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뒤섞이고 있을 때

출판단지 진입로에서도

살쾡이의 풍장이 열하루째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