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뭇 산이 울긋불긋 가을 단풍옷을 끼어입기 시작한다. 저렇게 비틀어지고 메말라 떨어지는 낙엽은 과연 무엇을 남기고 가는 것일까. 낙엽귀근(落葉歸根), 낙엽은 뿌리에서 생긴 것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일 뿐인데. 우리가 너무 호들갑 떨고 큰 의미를 붙이는 것은 아닐까. 하긴 그래야 가을 철학이 있고 또 시심(詩心)이 우러난다.
식물도 물질대사를 하기 때문에 노폐물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처럼 따로 콩팥 같은 배설기가 없어서 각각의 세포에 들어있는 액포(液胞)라는 작은 주머니에다 배설물을 담아둬서 잎이 떨어질 때 같이 내다버린다. 낙엽은 다름아닌 식물의 배설인 것이고, 때문에 늙은 세포일수록 액포가 더 크다. 식물은 똥오줌을 제 이파리에다 버린다니 참으로 우습다. 허나 저 식물은 ‘똥 만드는 기계’인 우리를 보고 괴짜 생물이라 할 것이다. 이 세상을 너무 자기 중심이거나 인간 중심으로 보지 말자. 내가 딴 생물이 되어 거꾸로 자연을 보면 못 보던 것이 막 보인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나 할까.
식물의 액포 속에 아름다운 단풍이 들어있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터질 듯 부푼 액포 안에는 카로틴·크산토필 같은 색소는 물론이고, 화청소(花靑素, 안토시아닌-anthocyanin)에다 달콤한 당분도 녹아 들어있다. 사탕수수나 사탕단풍은 유별나게 당분이 많이 들어있는 식물이라 거기에서 설탕을 뽑아내지 않는가. 아무튼 이것들이 단풍잎을 물들이는 것이다.
우리 눈을 황홀하게 하는 붉은잎 색은 주로 단풍(丹楓)나무 과(科)의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단풍나무과 식물이 5종이 있다. 다음 열쇠에 맞춰 단풍나무를 분류해보자. 잎 둘레가 갈라진 작은 잎(열편, 裂片)이 11개인 것이 섬단풍, 9개는 당단풍, 7개를 단풍, 5개 고로쇠, 3개가 신나무다. 그 중에서 당단풍이 가장 붉은색을 띤다.
액포 안의 ‘화청소’가 단풍 색 결정
단풍의 색깔은 꽤나 복잡하게 얽혀 결정된다. 카로틴(carotene)은 잎사귀를 당근같이 붉고 누르스름한 색을 내게 하고, 크산토필(xanthophyll)은 은행잎처럼 샛노랗게 하는 색소다. 그리고 화청소는 액포(세포)가 산성이면 빨간색을, 알칼리성이면 파란색을 내게 한다. 단풍의 색깔은 주로 화청소가 결정하지만, 앞의 여러 색소가 복합적으로 반응하여 식물마다 다 다른 색을 띤다. 물론 이런 색소는 가을에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여름 내내 짙은 엽록소에 가려 있다가 온도가 떨어져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액포에 당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화청소와 당이 결합하여) 단풍의 발색(發色)이 훨씬 더 맑고 밝다. 가을에 청명한 날이 많으면 당이 더 많이 만들어져 단풍이 더 예쁘다. 제 아무리 눈을 홀리는 단풍도 알고 보니 당분의 양과 산성도(산성, 알칼리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만약 가을 나무들이 이파리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차가워진 날씨에 온도가 떨어져 물이 얼기나 하면, 물은 물관을 타고 올라가지 못하는데 잎에서는 물이 쉼 없이 날아(증산)가니 결국 나무는 바싹 말라죽고야 만다. 영리한 나무는 그것을 미리 알고 아쉽고 아프지만 잎을 온통 떨어뜨려 버린다. 다가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면서.
독자 여러분은 이 글에 너무 한눈 팔지 말고, 다시 못 올 ‘천년의 이 가을’을 한껏 즐겨보시라. 우리의 어머니(mother) 자연(nature)은 정녕 말없이 아름답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포근히 품어주니 고마운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