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무등일보 바람의 징후 최지하 붉은 헝겊 같은 노을이 살다갔다 죽은 나무에 혈액형이 달라진 피를 돌려야 할 심장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기다림의 대상이, 그, 무엇이었던 동안 더 이상 풀빛은 자라지 않았다 대신에 동구 밖의 삼나무들이 푸른 잎을 마쳤다 가두어 놓았던 귀를 풀어 놓자마자 귀가 ..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경상일보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 이원복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금붕어를 닮은 항아리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성대를 다친 소녀들,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금붕어들 잠을 잔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배회하는 16분 음표의 음색은 표현할수록 거친 것이어서 누구라도 성대를 다치게 된..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조선일보 발레리나 최현우 부슬비는 계절이 체중을 줄인 흔적이다 비가 온다, 길바닥을 보고 알았다 당신의 발목을 보고 알았다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몸짓이 처음 춤이라 불렸고 바람을 따라한 모양새였다 날씨는 가벼워지고 싶을 때 슬쩍 발목을 내민다 당신도 몰래 발 내..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경남신문 체면 오서윤 (본명 오정순) 막, 죽음을 넘어선 지점을 감추려 서둘러 흰 천으로 덮어놓고 있던 익사자 최초의 조문이 빙 둘러서 있다 발을 덮지 않는 것은 죽은 자의 상징일까 얼굴은 다 덮고 발을 내놓고 있다 다 끌어올려도 꼭 모자라는 내력이 있다 태어날 때 가장 늦게 나온 발 저 맨발..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문화일보 반가사유상 최찬상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세계일보 주방장은 쓴다 이영재 눈은 이미 내렸다 새가 날아온다 그리고 새는 날아간다 이곳에서 시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먹을 것이 참 없다 먹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허기가 시보다 나은 점이라면 녀석은 문을 두드릴 줄 알다는 것 요리..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국제신문 단단한 물방울 김유진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밤을 깐다 복도가 나오고 수많은 문이 보인다 벌레는 아주 가끔씩 빛처럼 부서졌다 그때 흔들린 손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한 말을 다시 반복하는 뉴스는 보았다 나는 물을 마신다 물이 흩어진다 수많은 문이 열린다 흩어진 수많은..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부산일보 뱀을 아세요? 윤석호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 불안하기 때문이래요 손발 없이 귀머거리로 사는 동물은 또 없거든요 독이라도 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혀가 다 갈라졌겠어요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은인을 찔러 죽인 전갈 이야기 들어 보셨어..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서울신문 알 박세미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개가 아무렇게나 싸놓은 똥처럼 거기엔 무단 투기 금지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당당했지 버려진 적 없으니까 어느 날 거기 옆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누가 널 낳았니 이름이 없어 좋겠다 털이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지 정체가 발각되는..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
2014 경향신문 달라진 교육 심지현 오빠 내가 화장실 갔다가 들었거든, 내일 아줌마가 우릴 갖다 버릴 거래. 그 전에 아줌마를 찢어발기자, 우리가 죽인 토끼들 옆에 무덤 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야. 토끼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빠의 즐거움이쟎아. 아줌마는 가슴이 크니까 그건 따로 잘라서 .. 신춘문예 당선작 201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