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각질/강윤미 2010/문화일보 골목의 각질/강윤미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 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 자리의 1등성 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했다 속옷을..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구름 모자를 빼앗아 쓰다/최정아 2009/매일신문 구름 모자를 빼앗아 쓰다/최정아 한떼의 구름이 내게로 왔다. 한 쪽 끝을 잡아 당기자 수백 개의 모자들이 쏟아졌다. 백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의 모자도 나왔다. 그 속에서 꽹과리 소리와 피리 소리도 났다. 할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어께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삼..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담쟁이 넝쿨/조원 2009/부산일보 담쟁이 넝쿨/조원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집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낮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몸을 친친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그..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저녁의 황사/정영효 2009/서울신문 저녁의 황사/정영효 이 모래먼지는 타클라마칸의 깊은 내지에서 흘러왔을 것이다 황사가 자욱하게 내린 골목을 걷다 느낀 사막의 질감 나는 가파른 사구를 오른 낙타의 고단한 입술과 구름의 부피를 재는 순례자의 눈빛을 생각한다 사막에서 바깥은 오로지 인간의 내면 뿐이다 지평선이 하늘을 맞닿..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진열장의 내력/임경섭 2009/중앙일보 진열장의 내력/임경섭 누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아침, 삼푸통 마지막 남은 몇 방울의 졸음 있는 힘껏 짜낸 김 대리는 네모 반듯하게 건물 속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쌓인다 날마다 김 대리의 자리는 한 블록씩 깊어진다 아래층 이과장은 한 박스 서류 뭉치로 처분 되었다지 누군가 음료수를 뽑아 마실 ..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무럭무럭 구덩이/이우성 2009/한국일보 무럭무럭 구덩이/이우성 이곳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입니다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 저녁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꾸짖으로 옵니다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숟가락이 구덩이 옆에 꽂힙니다 잘 뒤집으면 모자가 되갰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형이 내가 한 눈 파는 사이 두덩이를 들고 나갑니다..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맆 피쉬/양수덕 2009/경향신문 맆 피쉬/양수덕 땡볕 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 젊음이 더 이상 수작 피우지 않아 좋아? 싫어? 스스로 묻다가 무거운 짐 원없이 내려놓았다 맆 피쉬라는 물고기는 물 속 바위에 낙엽처럼 매달려 산다 콘크리트 계단에 ..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오늘은 달이 다 닳고/민구 2009/조선일보 오늘은 달이 다 닳고/민구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 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 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 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 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술빵 냄새의 시간/김은주 2009/동아일보 술빵 냄새의 시간/김은주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을 방울방울 비 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 어떤 걸 좋아해?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 떼 ..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
즐거운 장례식/강지희 2009/문화일보 즐거운 장례식/강지희 생전에 준비해둔 묫자리 속으로 편안히 눕은 작은 아버지 길게 사각으로 파 놓은 땅이 관의 네 모서리를 앉혀줄 때 긴 잠이 잠시 덜컹거린다 관을 들어 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 새벽 이슬이 말갛게 씻어 놓은 흙들 그 사이로 들어가고 수의 위.. 신춘문예 당선작 2011.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