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빵 냄새의 시간/김은주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을 방울방울
비 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 어떤 걸 좋아해?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 떼
젖꽃판 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나는 보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후끈 달아오르고 싶었으나 바리케이드,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
곧게 편 허리며 잎겨드랑이며 빈틈이 없어
부러 해 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이 한통속들과
한 낮의 햇빛을 모조리 토해내는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
끄억 끄억 배고플 때 나는 입 냄새를 닮은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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