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

예의/조연미 2008/부산일보

능선 정동윤 2011. 10. 5. 08:51

예의/조연미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본다

어머니가 자식의 찬 바닥을 염려하듯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

고르지 못한

그녀의 마음자리에

귀 대고 바닥에 눕는다

누군가는 화장실 물을 내리고

누군가는 목이 마른지 방문을 연다.

무심무심 조용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예의처럼 모르는 척하는 일상

아니다, 아니다 그러나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

몸의 뜨거움으로

어느 귀퉁이의 빙하가 녹는지

창 너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또 잊혀지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뻔하고 흔한

세상의 산파들 사이를 질주하며

이번에는 흥청망청 살고 싶어요 소리치며

눈은 내리고

가지런히 슬픔을 조율하며 우는

벽 너머의 당신

찬 바닥에 기대어

누군가의 슬픔 하나로

데워지는

맨몸을 가만 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