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

담쟁이 넝쿨/조원 2009/부산일보

능선 정동윤 2011. 10. 5. 13:57

담쟁이 넝쿨/조원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집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낮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몸을 친친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 얼마나 좋아요 당신과 내가 맞잡은 풀실이

나무의 움막을 짜고 벽의 이불을 짜고 꽃의 치마를 짜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올실 풀려나간 구멍으로 좇아 들던 날실이 숯덩이만 한 매듭을 짓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벌레 먹힌 이력을 서로에게 남기거나

바람이 먼지를 엎질러 숭숭 뚫리고 얼룩지기도 하겠지만

그래요, 혼자서는 팽팽할 수 없어 엉켜 사는 거예요

찢긴 구멍으로 달빛이 새어나가도 우리 신경 쓰지 말아요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매일 한 타래씩 올올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르다 보면 담벼락 어딘가에

평지 하나 있을 지 모르잖아요 혹여, 허공을 붙잡고 사는

마법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따박따박 날개짓하는 나비 한 마리 등에 앉았네요

자,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한참을 휘감다 돌아 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