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산행은
백운동에서 시작하여 진달래 능선을 타고 곰바위 지나 갈딱고개에서 암릉(독수리바위)을
넘고 수락산 정상을 통과하여 점심을 먹고 석림사 방향으로 하산하여 장암역에 이르렀다.
분홍의 능소화와 배롱나무 꽃 그리고 무궁화는 팔월의 대표적 꽃이다.
꽃에 관심이 늘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고 하던데 요즘 남산의 산책로에는
줄줄이 서 있는 접시꽃이 한참이다. 해바라기처럼 큰 키에 나팔꽃 닮은 꽃이
돈가스 쟁반처럼 크기도 하다. 빨강, 분홍, 하얀색의 꽃들이 밝고 크고 환하게
길 가에 서서 산책길의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이런 여름의 한복판을 관통하며 비에 젖은 수락산을 찾아갔다.
출발 전에 한바탕 빗줄기가 쏟아져 잠시 소나기를 피했다가 수채화처럼
말끔해진 산 속으로 우리는 한 폭의 풍경이 되기 위해 들어갔다.
젖기로 마음먹으면 소나기가 문제이랴
오르기로 작정하면 바윗길이 문제이랴
비 오는 날의 단체 산행은 전체적인 연결고리가 느슨해져 힘이 든다.
그저 몇몇이 오붓하게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들고 걷기가 좋다.
시야도 좁아지고 행동반경도 움추려 들어 땅만 바라보며 걷다보면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안전에 더 집중하게 된다.
스스로 불편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락산은 등산복 입은 친구들에게는 꽤 익숙해진 산이라
통제의 끈을 강하게 묶을 필요가 없기도 하다.
구름이 걸린 산정을 바라보거나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감상하며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산 중턱에 도달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암릉 앞에 섰다.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독수리바위를 릿지 자세로 마주하고 발끝에 힘을 주었다.
30여 미터의 경사진 바위사면을 올려다본다.
바위의 견고한 저항과 등산화의 부드러운 바닥이 밀착하면 종아리는 더욱 긴장한다.
미끄러져서 추락하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빗물 흘러내리는 경사면을 집중하여 오른다.
두려움을 감수하고 서두르다 보면 어느새 바위의 끝자락에 도달한다.
여기서 조금 더 걸으면 수락산 정상의 국기를 만난다.
다행이도 점심때를 지나면서 정상을 통과할 수 있었고 앞서 간 친구들이 미리
물색한 장소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계속되는 비로 인하여 모두들 선뜻 배낭
풀기를 주저하였다. 앉아 먹든 서서 먹든 고픈 배는 채워야 한다.
일단 먹자하면서 자리를 잡아본다.
산에서 먹는 즐거움, 구수한 입담, 맘껏 털어내는 웃음들,
친구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식사를 시작하자 빗줄기가 잦아들다 드디어 멈추었다.
산행을 하다보면 이따금 동행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여인들이면 금방 우리들 관심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일생을 땅 속에서 지내다 마지막 일주일 정도를 지상에서
목이 터져라 울고 간 매미의 시체 주변에 개미 떼가 몰려들 듯
용기 있는 놈은 와서 건드려 보기도 하고, 어떤 놈은 슬쩍슬쩍 곁눈질하며
애써 관심을 감추기도 한다.
예비군복이나 등산복의 집단 속에 들어가서 다른 이성을 만나면
남자들은 노소에 관계없이 심하게 밤꽃냄새를 발산한다.
오늘도 두 여인이 우리들 가는 길에 동행을 하였다.
물이 넘치는 수락산 계곡에서 어쩌면 올여름 마지막 멱을 감았다.
친구들은 비와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시원한 물 속에 몸을 담그면 더 바랄 것 없는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여느 국립공원처럼 상의만 벗어도 벌금을 내야하는 걱정을
여기 수락산에서는 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들 자신만의 방법으로 땀을 씻어내며 멱을 감았다.
비로 시작한 산행은 물이 풍족한 석천계곡의 물에 멱을 감으며 마무리에 들어간다.
선영이는 산행만큼이나 뒤풀이를 꼭꼭 챙긴다.
힘이 들고 어려운 산행이나, 아쉽거나 부족한 산행도 잘 준비된 뒤풀이에서
술 한 잔 마시며 훌훌 털고 넘어 가자는 생각이리라.
그래서 출발할 때 벌써 뒤풀이를 염려하고, 산행 중에도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별똥별 꼬리처럼 빠르고 짧은 삶이지만 우리는 최대한 느리게 살아본다.
푹푹 찌는 여름이 가고 선선한 계절이 다가오는 다음 달에는
청평 호명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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