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남도기행(담양)

능선 정동윤 2013. 5. 12. 00:01

지난 근로자의 날엔 순천만의 국제정원박람회에 다녀왔고

오늘은 우리나라의 정원을 탐사해 보기로 하고

첫 지역으로 광주 인근의 담양으로 정하였다.

 

우리나라 정원은 은둔사상과 신선사상, 풍수지리설과 음향오행설

그리고 유교사상이 합쳐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한 부분이 되는지라

자연과의 경계가 애매하며 인공미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일반 고택은 바깥마당과 담장, 행랑마당과 행랑채, 사랑마당과 사랑채, 안마당과 안채

그리고 뒷마당(후원)과 사당을 두는 특징이 있다.

 

이번엔 일동지삼승(一洞之三勝)이라고 한 동네에 3곳의 명승지라는 담양의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을 중심으로 돌아보고 남도의 무르익어 가는 봄 속을 걸으며

옛 선비들의 자취를 만나 볼 계획이다.

은퇴를 하였거나 현실 정치에서 손을 떼고 관직에서 물러나 별서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거나

자연을 벗 삼아 새로운 삶을 추구해 가는 옛 선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은퇴를 하고 현업을 떠나는 흔들리는 우리 세대의 방향을 설정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한국의 3대 정원이라 일컫는 담양 양산보의 소쇄원과 보길도 윤선도 원림과

영양의 서석지 중에서 소쇄원을 먼저 선택하였다.

 

토요일 새벽에 아내와 함께 용산에서 광주행 기차를 타고,

광주에서 시외버스로 담양 소쇄원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둘러본 뒤에

취가정, 환벽당, 죽림재, 가사문학관, 식영정, 명옥헌원림, 슬로시티를 끝으로

당일치기 한국정원 탐방을 마치고 광주로 돌아왔다.

 

먼저 찾아간 소쇄원은 조선 중기 인물인 양산보가 조성한 민간 별서이다.

그의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되고 결국은 사사되자

양산보는 세속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소쇄원을 조성하였다.

이곳에 광풍각, 제월당, 대봉대, 화계, 담장, 계류가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

많은 선비들과 교류하면서 시를 짓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어두운 대숲과 밝은 담장 애양단을 조화시키고, 안개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자 뒤쪽의

굴뚝 대신에 정자 앞으로 연기가 올라오게 하여 안개를 연출하도록 하였고,

계곡의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도록 계곡의 돌 단을 수십 차례 고쳐 쌓으며

듣기 좋은 물소리를 찾았다고 한다.

소쇄원으로 들어올 때에는 고개를 숙이도록 입구의 문을 낮게 만들었고,

나갈 때는 편안하게 가도록 다리의 폭을 비교적 넓게 만들었다고 한다.

수목으로는 대나무, 매화,소나무, 느티나무,단풍나무,.은행나무,버드나무,

오동나무,복숭아나무,배롱나무, 측백나무,동백나무 등등이 심어져 있었다.

시간이 되면 유명한 소쇄원48영을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감상하고 싶었지만

봄날의 하루 해는 짧았다.

 

 

소쇄원을 떠나 한참을 걸어서 취가정을 찾았다.

취가정은 임진왜란 때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한 김덕령 장군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권필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노래를 불러서,

그를 위로하는 뜻으로 지었다는 취가정의 누마루에서

눈 아래 풍경을 즐기며 아내와 함께 느긋한 오찬을 즐기다가 환벽당을 찾아 갔다.

 

광주호 상류의 창계천 언덕 위에 지어진 환벽당은 나주목사 김운재가 조성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성원에게 학문과 시를 가르쳤다고 한다.

조망이 좋은 이곳 환벽당 마당에는 그의 며느리가 심은 매화나무가 세월의 깊이를

고목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풍광은 역시 일품이었다.

오른쪽 안채에는 후손이 살고 있으나 많이 쇠락하여 봄 햇살마저 나른하였다

 

식영정을 가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걸었다.

시외버스는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고,

택시 잡기는 더욱 어려워서 걷고 또 걸어서 가사문학관부터 방문하였다.

상춘곡의 정극인부터 시작된 가사문학은 송순과 정철이 꽃을 피웠지만

오늘의 걷기 행보로는 송강정과 면양정의 방문은 어려웠다.

 

가사문학관을 둘러보고 인근의 식영정을 찾아 언덕으로 올라갔다.

식양정 누마루에 앉아서 광주호에 맑은 물결과

밝은 햇살에 졸고 있는 오리 한마리를 바라보는데

어느 동네인지 모르지만 사물놀이의 정다운 가락이 흥겹게 들려 오기도 하였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고 하지만 이곳 식영정은 예외가 아닐까 한다.

 

다시 광주호의 주변을 따라 도로 위를 걸었다.

광주호 뚝방을 지난 후에 다음 목표인 명옥헌원림까지는 꽤 먼길이다.

가기 전에 다리 쉼을 삼아 죽림재를 찾아갔다.

날씨는 더워오고 목은 마르고 길은 멀다.

찾아가는 동네 어귀에 4백년 넘은 느티나무 정자나무가 우리를 반겨준다.

이 죽림재는 창령 조씨 집안의 문중 글방으로 지은 수련장으로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철폐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이곳에서 목도 축이고 물병에 물도 채우고 동백꽃이

갈색으로 녹아 내리는 초라한 모습을 보며, 지는 모습마저 아름다운 꽃은 없을까?

 

아무리 뚜벅이 체질로 바뀐 아내라지만 서너 시간을 뙤양 볕에 걷고도 별로 불평이 없기에

미안해서 지나가는 승용차를 잡아 1.5KM 정도는 편히 쉬며 가기도 하였다.

명옥헌 원림에 가는 길은 무덥고도 지쳐서 한센병을 지닌 한하운 시인의

소록도 가는 길이 생각났다.

 

(전략)

가도 가도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가는 길 ….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전라도 길 전라도 길

 

드디어 명옥헌에 들러 배롱나무 울창한 원림 속에서 오늘의 도보를 일단 마무리 하였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잘 정돈된 마을도 지나왔고 남도 인심을 느끼며 승용차도 탔다.

배롱나무 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면 이곳은 무릉도원이 아니라 무릉자미원으로 온통

붉은 배롱나무 꽃이 만발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던 배롱나무가

이제는 중부지방까지 올라와서 서울지방에서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구 환경의 변화와 흐름이 수목 생태계까지 많은 변화를 불러오게 되었다.

 

서울로 올 시간에 다소 여유가 생겨서 창평에 있는 슬로시티를 찾아보고

기차를 타기 위해 광주로 가기로 했다.

좋기로 한다면 송강정이나 면양정을 찾아보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넘치는 담양의 길을 걷고 걸어서 창평 면사무소 뒤쪽의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 모습이 남아있는 슬로시티에서 고향의 정취를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우리의 옛모습을 슬로시티라는 영어로 홍보하는 방법은 왠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광주로 돌아와서 금남로를 걸으면서 광주 시내를 짧게나마 돌아본 뒤에

용산으로 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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