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에 걸친 궁궐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첫째 주는 경복궁, 창덕궁, 후원(비원), 창경궁을 살펴보았다.
무려 8시간을 걸으면서 탐방하였으나 디지털 카메라의 충전을 확인하지 못하여
사진 몇 장 제대로 담아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두번 째 방문은 종묘와 덕수궁이라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 걸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궁궐로서 세종 시대에 가장 활기 찼으며
임진왜란 때 불이 탄 이래 273년 동안 폐허로 남았다가 대원군에 의해 복원되었다.
“만년토록 빛나는 큰 복을 지닌 궁궐” 이라는 경복궁은 철저한 준비와 설계로 축조하여
위엄과 권위가 돋보이며 조선 왕조의 소망과 이상이 담겨있다고 한다
전각으로 근정전, 사정원, 수정전, 강녕전, 교태전, 자경전, 동궁이 있고 경회루와 향원정 등에서
여가를 즐겼으며 수목으로는 중부 지방에서 자라는 이름있는 나무들이 골고루 심어져 있었다.
내외국인 붐비는 경복궁을 동쪽으로 빠져 나와 예전의 국군수도통합병원을 지나 북촌을 통과하여
창덕궁 돈화문에 이르렀다. 이곳은 궁궐의 기본 격식을 갖추면서도 자연 속에 조화롭게 만든
아름다운 모습이다. 궁전 건축과 전통 정원의 원형을 잘 간직한 창덕궁은 종묘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창덕궁 돈화문에 들어서면 왼편에 회화나무 세 그루가 있다.
예전에 선비들은 벼슬을 끝내고 관직에서 물러날 때 그 기념으로 뜰에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뭇가지 뻗음이 조금은 제멋대로라 이를 두고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며 좋아하였단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묘지에 심는 나무의 기준을 정하였는데 군주의 능에는 소나무,
왕족은 측백나무, 고급관리는 회화나무, 학자는 모감주나무, 서민은 무덤가에 사시나무를
각각 심었다고.
회화나무, 주엽나무, 아까시나무, 다릅나무는 잎이 비슷하여 구분하기 어려운데
꼭지 잎이 없으면 주엽나무이며 가장자리에 물결모양의 톱니와 험한 가시가 있다.
나머지 셋은 꼭지 잎이 있어 홀수로 달리며 잎의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끝이 오목하며
가시가 있으면 아까시나무이고 잎 끝이 뽀족하고 어린가지가 녹색이면 회화나무이다.
잎 끝이 좁으나 뽀족하지 않으면 다릅나무라고 한다.
북촌 한옥 마을에서 더위를 식히는 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간식으로 만두를 포장하여 가방에
넣고 궁궐로 들어 갔으나 간식을 먹기가 몹시 어려웠다. 덕수궁을 제외하고는 모든 궁에서는
음식의 섭취를 금하였다. 최근 경복궁 야간 개장으로 무질서한 행락행위로 몸살을 앓는 보도를 보고
개방을 추진한 공무원의 의식을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였다.
여유만 있으면 돗자리 깔고 먹는 습관이 남아 있어서 보호해야 할 장소는 개방에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후원(비원)은 개별 방문을 금지하고 반드시 문화재 해설가를 따라 관람하게 되고,
개별 행동도 철저히 금지 하였다.창덕궁 14만평 중 9만평이 후원으로 숲으로 가치도 높다.
오래된 숲인 이곳은 깃들기만 하여도 피로가 저절로 풀릴 것 같이 엄숙하기까지 하였다.
아름답고 귀중한 공공의 자산을 개인적인 편의로 함부로 취급하고 훼손하는 자세가 충분히
교육되지 않은 지금의 현실로는 좀 더 엄격한 문화재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창덕궁과 후원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창경원은 좀 바쁘게 걸었다. 더운 날씨에 조금씩 구름이
몰려 오더니 한두 방울 비가 떨어지기 시작 하였다. 물론 춘방지를 다 돌고 예전의 동물원 자리에
심어진 수목을 감상하는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기에 서둘러 궁을 빠져 나왔다.
창덕궁은 정조 시대에 화려하게 문화를 꽃 피웠다면 창경궁은 성종 시절에 웃어른인 대비들을
편안하게 모신 궁이라고 하였다. 이곳은 어릴 적에 소풍을 오거나 봄나들에 와서 벚꽃 구경을 한
추억이 있다. 벚꽃의 수명이 약 60 년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일제시대 이후로 심은 벚나무의 수명이
다한 그 자리에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살구나무나 매화나무를 심어도 봄의 화려한 잔치를 당연히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전각 주변엔 나무들이 있지 않고 담이나 후원 등 외곽을 중심으로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왕의 경호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왕과 신하들이 다니는 길을 엄격히 구분하여 군신의 구별이 엄격하였다.
중앙에 왕로가 있고 좌우 낮은 위치에 문신과 무신의 길이 놓여져 있다.
종묘에서는 신로가 왕로를 대신 하였고,왕로와 세자로가 신로 좌우에 배치되었다.
중국은 궁을 중심으로 좌에 종묘, 우에 사직단, 앞엔 신하들의 거주지 뒤엔 시장을 배치했으나
우리나라에는 풍수지리에 따른 배산임수로 뒤쪽의 시장은 생략하였다고 하였다.
일주일 후엔 종묘와 덕수궁 탐방을 위하여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산딸나무 꽃이 만발한 남산을 거쳐,퇴계로 3가, 을지로 3가, 청계천 3가를 가로 질러 종묘로 갔다.
남산 아래 교통 방송국 근처의 4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찾아보고
충무로에 있는 명보아트홀이 실버극장으로 변화된 모습도 알게 되었다.
종묘는 매시 20분에 한국인의 입장을 실시하였다.
10시 40분에 도착하였는데 입장 시간은 11시 20분이라 무려 40분을 기다려야 하였다.
남은 시간을 종묘 주변을 살펴 보다가 근처에서 멸치국물국수와 열무국수를 이른 점심으로
먹으며 바쁜 마음을 달래고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종묘에는 아무런 편액이 달려 있지 않았다. 심지어 정문인 외대문마저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귀신은 이름을 적지 않아도 귀신 같이 찾아오기 때문일까?
또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개별 입장을 철저히 막고,
내외극인 모두에게 반드시 문화재 해설가의 안내에 따르게 하였다.
더구나 근처에는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으로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문화재 훼손이
심하게 된다고 한다
종묘에서는 역대 왕의 신주를 모시고 엄격한 절차와 격식에 따라 장엄한 종묘대제를 치르는데
제례가 너무 많아 왕은 축시부터 시작하는 를 모두 주관할 수 없어 중도에 세자에게 넘겨 주었다가
세자도 힘이 들어 거의 영의정이 주관하느라 정무에 참가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이제는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딱 한 번 종묘대제를 치룬다고 한다.
궁궐에는 단풍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수정해야겠다.
궁궐을 짓는데는 단풍나무를 쓰지 않는다고.
단풍나무의 잎이 워낙 화려하게 잘 변신하기 때문에 변절자라는 오명 때문이다.
근 1시간 정도의 종묘의 해설을 듣고 청계천으로 내려와서 덕수궁으로 향하였다.
도중에 청계천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시청 앞 광장엔 인제 특산물 축제를 둘러보고 고종의 애환이 깃던 대한문으로 들어갔다.
덕수궁은 출입 시간이 밤 9시까지로 시간 제한이 거의 없고 음식물 제한도 없었다.
우린 고종이 러시아 건축가를 불러 새롭게 지은 정관헌부터 둘러보고 후원을 먼저 둘러보고
중화전, 석어당, 함녕전 ,석조전을 천천히 찾아보았다.
5월은 국제정원박람회와 자연에 동화된 담양의 민간 별서의 방문과
최고의 인공미를 자랑하는 궁궐을 돌아 본 결론으로는
그 어디에도 서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무나 숲에 대한 서민들의 문화는 꽃을 보아도 먹는 것을 상상하거나 약으로 생각하고,
여리고 아픈 전설을 구전으로 전하며, 틈이 나면 그저 큰 정자나무 아래서 쉬는 일이 대분분이었다.
왕족과 고관대작이나 양반의 사치스런 문화생활을 위한 피와 땀을 흘린 사람들은 서민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딘가에는 서민들의 모습이나 생활상이 숨겨져 있을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고 싶다.
일을 하기 위한 도구들이나 배고픔을 견디기 위한 먹을거리나 한을 풀어내는 노래에서
서민의 애환이 달린 문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행히도 근래에는 왕족과 귀족은 흔적들이 시민들의 볼거리에 일조하고 있고,
시민 의식의 발전으로 도시의 공원으로 새로운 문화의 창조가 기대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적 활동은 예전에는 왕들도 누리지 못했던
풍요롭고 광범위한 것이 아닐까.
정원 탐방의 마지막으로 관료들의 간섭을 받지않고 조경 전문가가 설계한
한강 속의 작은 섬, 선유도를 토요일 다시 찾아보았는데,
선유도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존중한 마음으로 꾸민 정원으로,
내가 본 도시공원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곳이라 생각하며
이러한 쉼의 공간이 옛 사람들의 정신가지 이어져 왔으면 좋겠다.
도시 공원이나 국립공원의 발달로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늘어나고 최근에는 지방마다
걷기 좋은 길을 만들며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이름있는 숲이나 길을 찾아서 걸어보고, 흩어져 있는 정원이나 별서의 방문도 하며
우리나라의 숲과 나무에 더욱 깊은 애정을 주고 싶다.
미진했던 점은 천천히 보완하고 아쉬운 곳은 다시 찾아보며 여러 지역을 다니고 싶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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