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춘천 나들이

능선 정동윤 2013. 7. 7. 22:05

 

장마철이라 멀리 길을 떠나기도 마땅하지가 않다.

전철이 닿고 시외버스로도 어렵지 않는 춘천으로 가 볼까하고

토요일에 아내에게 제안했더니 거절이었다.

비 오는 날 청승스럽게 다니는 것이 싫다고 하면서.

 

늦은 아침을 먹고 주섬주섬 여행용 배낭을 챙기고 있으니

아내도 마음이 변했는지 따라 나선다.

하늘이 잠시 파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일까?

천천히 용산역으로 향했다.일요일 아침이지만 대합실은 붐볐다.

여름은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 대합실은 젊은이들의 웅성거림으로

설렘과 여행의 기대감이 늘 출렁거리며 분위기가 고무풍선처럼 떠 다닌다.

 

나 혼자라면 전철로 가도 되겠지만 두 사람이라 쾌적한 청춘열차를 선택했다.

11시 30분 기차를 예약할 수 있었는데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것도 익숙해지면 즐기게 된다.

춘천가는 대중교통 편으로는 청춘열차가 가장 편한 방법이다.

냉방도 잘 되어 있고 지정좌석제로 붐비지도 않으며 빠르기조차 하니까.

 

기차에 타서는 혼자 가면서 읽으려던 책을 꺼내들고 책장을 넘겨보지만

동행을 두고 책을 읽는 것은 실례라는 눈총을 피할 수가 없었다.

사실 잘 읽히지도 않았다.

다음 주에 갈 청산도 이야기며 홍천 나들이 등의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 안내 방송이 흘러 나온다.

용산에서 1시간 10분 걸리니 금방이다.

 

언제부턴가 낯선 곳으로 떠날 때에는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높은 기대감에 따라 실망하는 날이 자주 있었고, 과장된 광고와 소문으로

아주 바보가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에 담담하게 떠나는 일이 익숙하다.

그저 잠시 분위기를 바꾼다는 기분과 약간의 호기심만으로 가볍게 떠나는 것이다.

 

안개와 호수의 도시도 장마철에는 공기가 비에 젖어 눅눅해지니 다니기는 똑같이 불편하다.

춘천역에 도착하자마자 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 열리고 있어서

그곳으로 가서 닭갈비로 점심을 하였다.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먹다보니 그저 맵고 뜨겁기만 하였다.

 

이때까지는 날씨가 흐려 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나니

는개보다는 진하고 이슬비보다는 약한 비를 뿌리더니 점점 커지고 있었다.

집을 나설 때 중도로 들어가 2인용 자전거를 빌려 유원지를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보트라도 타 볼까 했던 계획을 하중도의 공사로 출입이 금지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계획을 바꾸어 청평사로 향했다.

의암호를 따라 걸으면서 소양강 처녀의 동상을 보기도 하며 소양 2교를 건너서

소양강댐으로 가는 12번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걷기도 좋은 길이다,

아내는 이곳을 두어 번 가 본 경험이 있다며 얼른 앞장을 섰다.

 

소양강 선착장으로 내려와서 오래된 유람선을 타니

용인대학교 태권도부 학생들이 2~30명 우루루 뒤따라 올라탔다.

도착할 때까지 청춘의 푸르름을 마냥 뿜어내더니 우의도 우산도

준비하지 않은 청년들이라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되돌아 갔다.

빗줄기는 오락가락했지만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산책이라고 하기엔 좀 힘이 들어가고 등산이라고 하기엔 좀 수월한

청평사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우거진 수목 아래 걷는 길이다.

전설이 깃든 표적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빗줄기를 세며 올라갔다.

비가 내리는 덕분인지 사람들도 많지 않아 둘만이호젓하게 걸을 수 있었다.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을까 돌아오는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이.

 

기상대 예보라면 저녁 7시 50분에 귀경하는 기차의 창가엔 빗물이 흘러내리고

어두워진 바깥 풍경은 아궁이 속 불씨처럼 졸고 있어야 했는데

비는 그치고 바깥 풍경은 달아나는 우리를 끈질기게 쫓아오는 듯 하였다.

눈을 감아 너절한 풍경을 쫓아버리고

아내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조용필 음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승용차가 없는 나는 한 손에는 차표를 다른 손엔 읽을거리 한 권 들고

손쉽게 떠나는 작은 여행을 즐긴다.

기대도 희망도 품지 않은 채 마음이 가는 곳으로 그냥 가 보는 것이다.

이따금 기대 이상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으니까.

 

오늘은 청평사에서 800년 된 주목나무를 혼이 빠진 듯 바라보았고

춘천 시내를 돌아보고 난 뒤에

춘천역으로 가는 중에 수형이 아름다운 플라타너스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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