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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사내

능선 정동윤 2013. 12. 29. 19:29

심심한 사내

산능선


서울역 지하도,
아프리카 밀림을 꿈꾸었을까
늙은 수사자의 게으른 본능처럼
선하품 밀어내던 사내
깔고 잔 판도라 상자 고이고이 접었다

늘 도도한 권위의 노란 빛 차선에
원시적 충동의 무모한 도전,
놀란 시내 버스가 뒤틀린 채
두 줄로 새까만 비명 그려 내며
생사의 갈림길을 비켜 갔다

전조등 불빛에 넋 잃은 야성
야생 고양이의 허망한 죽음은
새벽녘 홀로 지는 낙엽보다 가벼워
상처 난 도시의 붉은 혈흔도
그 일그러진 사내의 걸음 막지 못했다

서울역 지하도
곤하게 누워 있는 불경기,
술병 흔들어도 일어 나지 않는다
봄 비에 실린 차가운 우울
긴 남루의 행렬만 바들바들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