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릉

여주 영릉/신륵사

능선 정동윤 2014. 2. 25. 13:37

토요일은 북한산 일요일엔 남한강을 걸었다.

아름다운 그림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고

즐거운 노랫소리는 자주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꽃망울 터지는 봄 풍경은 평생을 반복해도 지겹지가 않다.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메스컴에서 남쪽의 꽃소식을 전해주면

근질근질한 몸이 먼저 대문을 활짝 열고 봄앓이를 시작한다.

눈 속에서도 핀다는 복수초 꽃 소식이 들리는 2월의 마지막 주말에

북한산 개나리보다 남한강 잔물결보다 먼저 봄나들이를 하였다.

 

2009.6.30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왕릉은

역대 왕과 왕비의 능으로 42기 모두를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 왕조의 무덤은 모두 119, 능이 42기, 원이 13, 묘가 64기로

능은 왕과 왕비,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 그 외의

왕족은 묘라 부른다. 그 중에서 내가 관심을 둔 능 42기이다.

 

서울 근교의 정릉, 태릉, 의릉, 서삼릉, 서오릉  동구릉 등을 보고

영월의 단종의 능까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어릴 때 소풍 갔을 때는 그저 산처럼 큰 무덤이었고

이름도 모르는 아름드리 큰 나무의 우거진 숲이었고

부드러운 잔디가 운동장보다 훨씬 넓게 심어져 있었고

무서운 얼굴의 석상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내려다 보던 곳을.

 

그 첫번째 탐방으로 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합장된 영릉(英陵)

17대 효종과 인선왕후가 아래 위로 배치된 영릉(寧陵)이 놓여 있는

여주로 정하고 가는 김에 천년 고찰 신륵사까지 보고 오기로 하였다.

 

강변역 동서울터미널에서 930분에 출발하여 여주종합터미널에 11시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영릉까지 걷기로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어떤 여행이나 시작점을 찾기가 좀 어렵다. 시작점만 확실하게 잡히면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면 되는데 그 시작점이 늘 불안스럽다.

대충 감을 잡고 시내를 벗어나 세종대왕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세종대왕의 영릉은 탐방객들로 붐비고 있었지만 효종대왕의 영릉은 한산하였다.

업적을 많이 남긴 세종대왕은 돌아가셨지만 방문객이 줄을 이어 분주하고,

생전에 바쁘지 않으셨는지 효종대왕은 사후에도 바쁘지 않고 조용하다.

점심은 전투 식량인 건빵 두 봉지를 사서 이동하며 먹었다.

 

영릉을 벗어나 가까운 세종산림욕장으로 가서 남한강 자전거 길을 따라

연인교(구 여주대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황포돛대 선착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신륵사 앞까지 배를 타고갈 수도 있는데 선착장은 문이 닫혀 있었다.

겨울 강변을 걸으면 옷을 여미고 바람에 휘청 거릴 줄 알았는데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파도 소리도 은은하게 들리고 미세먼지에 가린

햇살만 침침하게 쏟아진다.

 

체력이 허락할 때 부지런히 유람을 다녀야겠다.

그리고 많은 기록과 사진을 보관하여 두었다가

언젠가 행동이 제한을 받아 멀리 갈 수 없을 때

그것들을 꺼내어 소의 되새김처럼

조금씩 아껴가며 읽으며 다시 감동을 받고 싶다.

 

감동을 먹지 않으면 감동을 배설할 수 없고

감동을 느끼지 못하면 감동적인 글을 쓸 수가 없다.

감동은 억지로 만들어 내거나 연구하여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감동을 잘 먹는 사람과 잘 느끼는 사람은 있는 것 같다.

스쳐가는 순간의 행위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잘 표현하면

글이 되고 문장이 되고 읽을거리가 된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 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고려 말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조선시대 세종의 영릉이 여주로 천정(이장)

1469년부터 왕실의 원찰로 중수되고 성종,현종, 영조,철종 때 또 중수하였다고 한다.

절은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한강 휘돌아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작은 언덕 위에 잡고 있으니

찾아오기도 편하고 쉬어 가기도 좋으며

풍경 또한 여느 고찰에도 뒤지지 않았다.

 

신륵사를 돌아보고 명성황후의 생가와 황학산 수목원에 가기 위해서

다시 연인교를 건너갔다. 영월루에 올라 건너편 신륵사를

조망해 보고 길을 찾아 나서는데 발바닥에서 물집이 생기는 듯하고

건빵 두 봉지로 지금까지 벼텨 온 생각이 나서 몇 군데 음식점을

살피다가 시외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오후 4.

서둘러 410분 버스표를 구입하면서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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