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북아등 726

능선 정동윤 2015. 8. 17. 08:52

 


 

지난 토요일이 입추였고 다음 주 일요일이 처서,더위는 역시 말복 더위다.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고, 바위는 냄비 속의 계란처럼 푹푹 익어간다.

그래도 우리는 콘크리트 찜통의 도시를 벗어나 산에 오른다.

 

 

더운 열기를 온몸으로 감싸안고 산을 오르는 산객의 뒷모습이 지쳐 보인다.

푸른하늘엔 하얀 더위가 가득 차 있고,  

갈색 화강암 위로 걷는 산객의 뒷모습을 오려내는 앵글도 뜨끈뜨끈할 것이다.

 

어께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뿐하게 걷고 싶지만

아직도 삶의 무게처럼 배낭은 쉬 줄어들지 않는다.

언젠가는 지팡이만 들고 걷겠지만

아직은 내 짐을 다 내려놓을 수가 없다.

 

따로 걸어도 같은 생각, 시원한 계곡물을 상상하는 일,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을 훔치며 산 속 계곡의 알탕을 꿈꾼다.

 

완행열차처럼 역마다 쉬어간다. 시원한 그늘과 바람만 있으면 간이역이 되어 우린 멈추었다 걷는다.

쉬면서 손수건을 적시고 걸으면서 말린다,1.5L의 물도 모자랄 것 같다.

 

한 송이의 원추리 꽃을 피우기 위해 여름은 그렇게 더웠나 보다.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가뭄은 계속되었고 일기예보는 자주 틀렸나 보다.

걷기 바쁜 와중에도 카메라맨은 자연의 숨결을 찾아 더듬는다.

 

여름에는 등산보다 하산이 한결 수월하다.

쥘부채로 바람을 만들어 보지만 내 주위만 매돌 뿐이다.

하산의 땀은 오를 때의 반만 흘리지만 거리와 속도는 두 배이고

풍경도 두 배로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한주는 알프스의 긴 여정을 준비하며 행복해 한다.

준비하고 기다리는 설렘으로 하루가 바쁘다.

50일 간의 긴 트래킹 중에 보내주는 사진으로 우리도 여러번 열광할 것이다.

 

물푸레산장의 작은 물로도 더위를 깨끗이 씻어낸다.

교대로 등목을 할 만큼 물이 넘치지 않았지만

이곳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시원하다.

 

무더운 여름에 짧은 거리를 길게 올라오는 이유도

이 시원한 기분을 만끽히려고 오는 것이 아닐까?

보는 것 만으로 시원하다.

 

오늘 물푸레산장의 스위트룸은 자리가 없어서 옆으로 비껴 방을 만들었다.

일단 몸의 열기를 빼내며 좀 쉬었다가 준비한 오찬을 즐긴다.

 

산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다.

산 아래서는 빈찬도 산에서는 성찬이다.

나는 주중엔 체중이 줄고 주말엔 체중이 느는 편이다.

 

십 년 후에 이 사진을 보면 그때가 좋았노라고.

하루 뒤에 이 사진을 보면  그대가 좋았노라고.

90대의 철학자는 60대가 가장 행복하였다고 회상하였다

아마도 우리들의 지금 이 모습이 아닐까?

 

진관사 계곡의 녹색 숲에는 오늘 더위 보다 뜨거운

지나간 우리들의 산행 흔적이 촘촘히 박혀져 있을 것이다.

 

산을 오르고, 숲 속을 거닐고, 계곡에서 쉬고 나야

돌아오는 일주일이 가볍다.

 

처음엔 다른 길로 왔지만 내려갈 때는 모두 같은 길로 간다

동행의 친구가 있기에 무더위도 피해간다.

나무에 둘러싸인 배경을 찾아 저격수처럼 기다리는 카메라맨.

 

보이는 풍경이 있으면 보는 사람이 있고

찍히는 사물이 있으면 찍는 앵글도 있다.

자연스런 풍경을 찾아내고 오려내는 솜씨가 좋다.

 

 여기까지 같이 왔고 지금도 같이 걷고 있으며 앞으로도 함께 걸어 갈 동무들,

삶의 질은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걸으며 풍요로와지고

행운도 행복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계곡 하류의 넉넉한 물을 보니 그냥 뛰어들고 싶다.

편안한 하산도 더위 앞에선 옷을 벗어 던지고 싶다.

해가 지고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없을 때

조용히 물에 잠기고 싶다. 

 

굽은 소나무가 북한산을 지킨다.

잘 생기고 훤출한 나무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온갖 악조건을 이겨내고 비바람에 견디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자리에 넓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그런 나무이고 싶다.

 

진관사 길에도 데크 계단이 만들어지고 있다.

산도 보호하고 사람도 보호하는 안전한 길이 되었으면.

 

미완의 데크길을 걸어가 본다.

 

길이 다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 오고,

우리들은 그 사람을 피하여 다닐 것이다.

 

한주가 이동식 까페 "스타봉스"에서 팥빙수를 챙겨 주었다.

알프스에 다녀올 때까지 북한산을 잘 지키라고...

 

 

여름 한 복판에서 가을의 전령을 만났다.

한 송이 코스모스를 보고 이내 풍요로운 가을을 느끼는 우리는 아직 늙지 않았겠지.

일년생 풀도 다년생 나무도 가을을 다 같이 맞이하고 나름대로 결실을 맺고 잎을 떨군다.

 

 

빙수 한 숟갈이라도  편안한 자세로 먹자.

150 여년 된 느티나무 정자 아래라 시원하기 그지없다.

수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그 자리에 우리도 잠시 쉬었다 간다.

나무는 우릴 기억하지 못해도 우린 나무를 기억한다.

 

팥빙수 한 그릇으로 하산의 땀을 모두 식히고

북아등 726회를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