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가난 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 하나 살았네
하루는 이 개구리
쌀 한 말을 얻어 오려
벌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섰네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도랑으로 가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소시랑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소시랑게야, 너 왜 우니?"
소시랑게 울다 말고 대답하였네
"발을 다쳐 아파서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소시랑게 다친 발 고쳐 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논두렁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논두렁에 가보니
빙앗다리 한 마리 엉엉 우네
방앗다리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방앗다리야, 너 왜 우니?"
방앗다리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길을 잃고 갈 곳 몰라 운다"
개구리 바쁜 길 잊어버리고
길 잃은 방앗다리 길 가르쳐 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복판 땅구멍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땅구멍에 가보니
소똥굴이 한 마리 엉엉 우네
소똥굴이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 뿌구국 물어 보았네
"소똥굴이야, 너 왜 우니?"
소똥굴이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구멍에 빠져 못 나와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 버리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끌어내줬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섶 풀숲에서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풀숲으로 가보니
하늘소 한 마리 엉엉 우네
하늘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 하늘소야 , 너 왜 우니?"
하늘소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풀대에 걸려 가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길 잊어 버리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었네
개구리는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웅덩이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물웅덩이 가 보니
개똥벌레 한 마리 엉엉 우네
개똥벌레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개똥벌레야, 너 왜 우니?"
개똥벌레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물에 빠져 나오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 주었네
발 다친 소시랑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앗다리 길 가르쳐주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끌어내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내주고
착한 일 하느라고 길이 늦은 개구리
형네 집에 왔을 때는 날이 저물고
쌀 대신에 벼 한 말 얻어서 지고
형네 집을 나왔을 땐 저문 날이 어두워
어둔 길에 무겁게 짐을 진 개구리
디퍽디퍽 걷다가는 앞으로 쓰러지고
디퍽디퍽 걷다가는 뒤로 넘어졌네
밤은 깊고 길은 멀어 눈앞은 캄캄하여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 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하늘소 윙하니 날아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무거운 짐 지고 못 가 걱정한다"
그랬더니 하늘소 무거운 짐 받아 지고
개구리 뒤따랐네
무겁던 짐 벗어 놓아 개구리 가기 좋으나
길 복판에 소똥 쌓여
넘자면 굴러지고 돌자면 길 없었네
개구리 할 수 없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똥굴이 휑하니 굴러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소똥 쌓여 못 가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똥굴이 소똥더미 더 굴리어
막혔던 길 열리었네
막혔던 길 열리어 개구리 잘도 왔으나
얻어 온 벼 한 말을 방아 없어 어찌 찧나?
방아 없이 어찌 쓸나?
개구리 할 수 없이 마당가에 주저 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방앗다리 껑충 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방아 없이 벼 못 찧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방앗다리
이 다리 찌꿍 저 다리 찌꿍
벼 한 말 다 찧었네
방아 없이 쌀을 찧어 개구리는 기뻤으나
불을 땔 장작 없어 쓸은 쌀을 어찌 하나
무엇으로 밥을 짓나!
개구리는 할 수 없이 문턱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시랑게 벼르륵 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장작없어 밥 못 짓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시랑게 폴룩폴룩 거품 지어
흰 밥 한 솥 잦히었네
장작없이 밥을 지은 개구리는 좋아라고
뜰악에 멍석 깔고 모두들 앉히었네
불을 받아 준 개똥벌레
짐을 져다 준 하늘소
길을 치워 준 소똥굴이
방아 찧어 준 방앗다리
밥을 지어 준 소시랑게
모두모두 둘러 앉아
한솥밥을 먹었네
#1957년 백석 - 집게네 네 형제 - 동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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