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능선 정동윤 2016. 4. 19. 18:44

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가난 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 하나 살았네

 

하루는 이 개구리

쌀 한 말을 얻어 오려

벌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섰네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도랑으로 가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소시랑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소시랑게야, 너 왜 우니?"

 

소시랑게 울다 말고 대답하였네

"발을 다쳐 아파서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소시랑게 다친 발 고쳐 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논두렁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논두렁에 가보니

빙앗다리 한 마리 엉엉 우네

 

방앗다리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방앗다리야, 너 왜 우니?"

 

방앗다리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길을 잃고 갈 곳 몰라 운다"

 

개구리 바쁜 길 잊어버리고

길 잃은 방앗다리 길 가르쳐 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복판 땅구멍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땅구멍에 가보니

소똥굴이 한 마리 엉엉 우네

 

소똥굴이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 뿌구국 물어 보았네

"소똥굴이야, 너 왜 우니?"

 

소똥굴이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구멍에 빠져 못 나와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 버리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끌어내줬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섶 풀숲에서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풀숲으로 가보니

하늘소 한 마리 엉엉 우네

 

하늘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 하늘소야 , 너 왜 우니?"

 

하늘소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풀대에 걸려 가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길 잊어 버리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었네

 

개구리는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웅덩이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냉큼 뛰어 물웅덩이 가 보니

개똥벌레 한 마리 엉엉 우네

 

개똥벌레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개똥벌레야, 너 왜 우니?"

 

개똥벌레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물에 빠져 나오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 주었네

 

발 다친 소시랑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앗다리 길 가르쳐주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끌어내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내주고

착한 일 하느라고 길이 늦은 개구리

 

형네 집에 왔을 때는 날이 저물고

쌀 대신에 벼 한 말 얻어서 지고

형네 집을 나왔을 땐 저문 날이 어두워

어둔 길에 무겁게 짐을 진 개구리

디퍽디퍽 걷다가는 앞으로 쓰러지고

디퍽디퍽 걷다가는 뒤로 넘어졌네

 

밤은 깊고 길은 멀어 눈앞은 캄캄하여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 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하늘소 윙하니 날아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무거운 짐 지고 못 가 걱정한다"

 

그랬더니 하늘소 무거운 짐 받아 지고

개구리 뒤따랐네

무겁던 짐 벗어 놓아 개구리 가기 좋으나

길 복판에 소똥 쌓여

넘자면 굴러지고 돌자면 길 없었네

개구리 할 수 없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똥굴이 휑하니 굴러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소똥 쌓여 못 가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똥굴이 소똥더미 더 굴리어

막혔던 길 열리었네

 

막혔던 길 열리어 개구리 잘도 왔으나

얻어 온 벼 한 말을 방아 없어 어찌 찧나?

방아 없이 어찌 쓸나?

개구리 할 수 없이 마당가에 주저 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방앗다리 껑충 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방아 없이 벼 못 찧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방앗다리

이 다리 찌꿍 저 다리 찌꿍

벼 한 말 다 찧었네

 

방아 없이 쌀을 찧어 개구리는 기뻤으나

불을 땔 장작 없어 쓸은 쌀을 어찌 하나

무엇으로 밥을 짓나!

 

개구리는 할 수 없이 문턱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시랑게 벼르륵 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장작없어 밥 못 짓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시랑게 폴룩폴룩 거품 지어

흰 밥 한 솥 잦히었네

 

장작없이 밥을 지은 개구리는 좋아라고

뜰악에 멍석 깔고 모두들 앉히었네

 

불을 받아 준 개똥벌레

짐을 져다 준 하늘소

길을 치워 준 소똥굴이

방아 찧어 준 방앗다리

밥을 지어 준 소시랑게

모두모두 둘러 앉아

한솥밥을 먹었네

 

 

#1957년 백석 - 집게네 네 형제 - 동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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