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문정희

능선 정동윤 2021. 8. 20. 19:55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문정희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 더 튼튼하게 좀 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와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울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 년 후에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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