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남신의주 박씨봉방/백석

능선 정동윤 2011. 8. 19. 10:26

남신의주 박씨봉방/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비도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 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피잉 괴일 적이며

또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네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울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뜨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러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긱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

난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는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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