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짧은 시 이야기
신경림
어느날 인사동에서 시를 공부한다는 젊은이를 만나 다음과 같은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이 : 저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를 공부하는 문학도이기도 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가는한 한 아이들한테 많은 시를 읽게 합니다만,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시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현대시는 당연히 이렇게 어려울 수 밖에 없는가,
이 점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십시오.
나 : 현대시가 어려워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령 1차 대전 후 시가 너무 어려워져서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기 시작하자
이를 걱정한 오든(Wystan Hugh Auden,1907 - 1973)같은 시인은
<< 옥스퍼드 북 오브 라이트 버즈(Oxford Book of Light Verse)>>라는 엔솔로지를 편집하면서
가볍고 대중적인 시 운동을 주장합니다.
전통적으로 시는 소리와 가까운 것으로 여겨져왔지요.
하지만 근대와 와서는 시인들은 시를 가지고 노래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시를 통해서 삶의 가치와 진실을 추구하고 세상을 새롭게 발견해 갑니다.
나아가서 소재를 밖에서 찾지 않고 자기 내부에서 찾는 경향도 갈수록 심해집니다.
말하자면 시를 통해서 자기 탐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러니 시는 자연 어려워지고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이 길은 처음에는 산문,
다음에는 영상매체로부터 위협을 받으면서 시가 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시의 난해성에는 일정부분 부득이한 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전혀 일관성이 없는 엉터리 난해시 입니다.
이런 엉터리 난해시가 되는 되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말할 능력을 획득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니까 자연 시가 어려워집니다.
두번째는 말장난에 치우친 경우입니다.
말을 돌리고 비틀고 하다보니까 시가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세번째는 시를 억지로 만든 경우입니다.
내용이 없으니까 시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난해시,
이런 시에 대해서도 그런대로 애정을 가져야 겠지만요.
하지만 엉터리 난해시는
독자로 하여금 시를 외면하게 만드는 내적 요인이 된다는 점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이 : 요즘 독자들은 더욱 시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이 원인이 다 시인들에게 있는 걸까요?
나 : 물론 그렇지는 않지요.
산업혁명 이후 매체의 확대는 계속 시를 압박해 왔습니다.
인쇄기술의 발달은 시를 대신하여 산문을 문학의 왕자의 자리에 앉혀 놓았으며
20세기 들어와서는 영상매체가 대중의 총아가 되지 않았습니까.
21세기는 인터넷 시대라고 할 만큼 전세계적으로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종이문화 전체가 사이버 예술 앞에 위축당하고 현상이 벌어졌고,
그 피해자의 선두에 시가 서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인들이 시는 쫄딱 망했다고 청승을 떨거나
비분강개하는 꼴은 정말 보기 역겹습니다.
한때 시가 산문이 할 수 없는 것을 찾았듯이,
사이버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시만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다시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인들이 마음을 닫고 움츠러들 것이 아니라
활짝 열어 제치는 것입니다.
시가 너무 닫혀 있어 독자와의 대화 또는 교섭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
지금 시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젊은이 : 저같이 시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나 : 물론 이런 시가 좋다,
시란 이렇게 써야 한다고 좋은 시의 기준을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터무니없이 용감한 사람이거나 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겠지요.
하지만 이 점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남들도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시를 좀 써 달라는 것입니다.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도 모르는 그런 시가 너무 많아요.
다음으로는 시를 억지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지요.
나도 시는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시를 만드는 경향이 너무 많아요.
시가 작위적이라는 뜻이지요. 리듬이란 게 뭡니까?
자연스러움, 그것이 바로 리듬 아니겠어요?
요즘의 시에 리듬이 없다는 것은 시가 너무 작위적이어서 나오는 말이지요.
또 시를 너무 마구 써대요.
많이 쓰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하지만 한 편 으로 쓸 수 있는 시를 다섯 편, 열 편으로 쓰는 경향들이 있어요.
이래서 시의 인플레가 생기고 시는 독자로부터 외면 당하지요.
이런 경우도 있어요.
첫시집이 좋아서 제가 극찬한 신인이 있었어요.
1년이 안돼 두번째 시집이 나왔어요.
한데 그 수준이 엉망이에요.
알고보니 습작 시절에 썼던 시를 묶어 냈다는 거예요.
그 신예는 두번째 시집으로 인해 첫번째 시집의 영예도 까먹었어요.
자기 작품이라도 과감히 버리고 취하는 용기가 없다면 좋은 시를 쓰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위 유행에서 과감히 벗어나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남들과 달라야 그게 좋은 시지
남들이 다 쓰는 그런 류의 시를 써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젊은이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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